수상자 이야기 모음

살맛나는 세상을 통해 발굴된 사회의 선행, 미담 사례를 보다 널리 알리고 격려합니다.

우정선행상 수상자

  • 김은숙 씨 사진

    대상김은숙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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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상사랑의샘터 EC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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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상송헌섭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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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상손빛회

수상자 이야기

대  상 : 김은숙 - 황혼, 나눔의 노을로 물들다

황혼, 나눔의 노을로 물들다 관련이미지 1

인생을 소설에 비유한다면 김은숙(81) 씨의 소설은 해피엔딩임에 틀림없다. 한숨과 눈물의 세월을 비움과 나눔의 기쁨으로 물들여온 까닭이다. 팥죽집을 운영하며 40여 년간 나눔을 지속해온 그는 2009년부터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기부한 돈만 12억 원이 넘는다. 그 가운데 9억여 원은 남편이 남긴 아파트를 팔아 현금으로 바꾼 것이다. 누군가는 투자를 위해 아파트 거래를 하고, 누군가는 기부를 위해 그 일을 한다. 그의 선택이 우리의 욕망을 돌아보게 한다.

 

수입이 있으니 기부했을 뿐

 

노년의 얼굴은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것이다. 자주 품은 감정이나 수시로 지은 표정이 얼굴이란 '이력서'에 고스란히 남는 까닭이다. 그의 첫인상은 명도보다 채도로 다가온다. 온화함이 주는 '밝음'보다, 담백함이 불러온 '맑음'이 한발 앞서 전달된다. 확언하건대 끝없이 비웠거나 수없이 나눠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얼굴빛이다. 이제 막 만났는데도, 벌써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 같다.

"팥죽집은 지난 6월까지만 하고 그만뒀어요. 병원에서 진단해보니 혈관이 좁아졌대요. 장사하다 실수하는 일도 잦아져서 아들에게 운영권을 넘겨줬어요. 돌아보니 참 열심히 살았더라고요.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장사하는 생활을 40년이 훌쩍 넘도록 했으니까요. 수입이 있으니 기부도 할 수 있었어요. 몸은 힘들었지만, 그 덕에 마음은 덜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의 나눔은 1976년 서울 삼청동에 ‘서울서둘째로잘하는집’이란 팥죽집을 내면서 시작됐다. 그 무렵 그의 남편은 자신의 월급을 덜어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소액의 장학금을 보내곤 했다. 그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남편 월급만으로는 살림이 빠듯해 팥죽집을 열고도, 어려운 이들을 돕는 일만큼은 자신도 꼭 해보고 싶었다. 충북 음성 꽃동네를 시작으로 도움이 필요한 곳에 꾸준히 후원금을 보내기 시작했다. 수입이 늘어나면 기부처와 기부금을 늘려나갔다. 그럴수록 마음이 가벼워졌다.

“제 나이 마흔네 살 때 딸아이의 정신질환이 시작됐어요. 친어머니가 그 질환을 앓다 돌아가셨으니 아마 유전이었을 거예요. 참담하게 생을 마감하신 어머니와 그 병을 물려받은 딸아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더라고요. 고통스런 사십 대를 보내면서 남편에게 '언젠가 명상을 배워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어요. 그 소망을 이룬 건 쉰 살 때예요. 법정스님이 계시던 전남 순천 송광사에서 4박 5일간 마음수련을 했죠. 닷새 동안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천배를 하다가도 울고 참선을 하다가도 울었어요. 다 울고 나니 몇 겹의 껍질이 동시에 벗겨진 것 같더라고요. 껍질에 매달리지 않고, 제대로 나누며 살고 싶어졌어요.”

이후 매일 조금씩 명상을 하면서, 묵은 아픔이나 헛된 욕심을 비우며 살았다. 비워낸 그 자리를 나눔으로 채웠다. 비움에서 나눔으로, 나눔에서 비움으로, 그의 삶은 오늘도 반복 중이다.

 

황혼, 나눔의 노을로 물들다 관련이미지 2



내놓으니 후련하다

 

더 많은 곳에 기부하고 싶어도, 어디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헤매는 경우가 많다. 그도 그랬다. 오래된 후원을 지속하되, 새로운 후원은 전문 단체의 힘을 빌리기 시작했다. 2009년 1월 사회복지공동 모금회에 매월 50만 원씩 정기후원을 시작한 그는 2010년엔 100만 원씩, 2012년엔 200만 원씩, 2013년 이후엔 300만 원씩 다달이 기부를 이어갔다. 2015년부턴 서울특별시은평병원 환자들에게 한 달에 두 번 간식비용을 지원하는 일도 병행했다. 서울특별시은평병원은 입원환자 가운데 40% 이상이 취약계층이다. 면회 올 보호자가 없는 그들에겐 간식을 보내줄 사람이 따로 없다. 간식을 먹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한 공간에 있으니 안타까움이 매우 컸다.

“우리 딸이 은평병원 낮병동에 다녀요. 보호자 강의가 한 달에 두 번 있어 빠짐없이 참여하는데, 어느 날 강의를 들으러 갔다가 직원들이 간식 문제로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봤어요. 어린 친구들은 간식을 먹고 싶어 울기도 한다더라고요. 작게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간식을 지원하기 시작했어요.”

처음 몇 년간은 초코파이며 주스, 두유 등을 사서 대중교통을 타고 병원에 직접 갔다. 매달 40만 원 가량의 간식비용을 보내는 것으로 대신하는 지금도, 물품을 손수 사서 배달하던 기쁨을 그는 잊지 않고 있다.

그의 기부가 정점을 찍은 건 2019년 초다. 남편의 유산인 아파트를 덜컥 팔아 기부금으로 선뜻 내놓은 것이다. 파격적인 그 기부는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일이 아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10년 전부터 자신은 물론 자식들에게도 누누이 말해온 다짐이자 약속이었다.

“그 아파트는 남편이 제게 남긴 전 재산이에요. 월급쟁이 시절 주택부금을 오래 부어 장만했는데, 훗날 재개발이 되면서 제법 비싼 아파트가 됐어요. 남편은 아픈 딸에게 물려주라고 했지만, 그이가 생전에 보여준 삶의 태도를 생각하면 사회에 환원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죠. 상속이 자식을 망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혹여 제 마음이 바뀔까, 매월 300만 원씩 기부해오던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작정하고 찾아갔어요. 아파트를 기부하겠다고 했더니 현금밖에 받을 수 없다더라고요. 그래서 냉큼 팔았어요. 욕심이 생기기 전에요.”

양도소득세를 내고 보증금을 돌려주니 9억여 원이 남았다. 모두 기부했다. 좋은 일을 했다는 보람보다, ‘할 일을 했다’는 생각에 속이 후련했다.

 

황혼, 나눔의 노을로 물들다 관련이미지 3


그 마음 너무 잘 아니까

 

그 돈 가운데 2억 원은 서울특별시은평병원에 지정 기부했다. 형편이 어려워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들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의 기부 덕분에 2019년 65명의 환자에게 6,500만 원 상당의 의료비가 지원됐다. 정신과적 응급상황에 놓인 기초생활수급권자는 물론 차상위계층과 노숙인, 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발달장애 아동 등이 혜택을 받게 됐다. 그런 식의 도움이 2년 더 진행된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환자들에게, 그의 선행은 ‘기적 같은’ 동아줄이 되어줄 것이다.

"병원 이야기를 들어보면, 발달장애 아동을 위한 기부는 있어도 성인 정신질환자를 위한 기부는 없다고 해요. 분명 ‘아픈 사람들’인데, 세상 사람들에겐 ‘미운 사람들’로 보이는거죠. 사실 엄마인 저도 딸이 미울 때가 있어요. 마음이 아픈 건 말할 것도 없고요. 근데 저보다 더 힘든 보호자들이 있을 거예요. 저는 일이라도 해왔지, 이도 저도 못 한 채 종종거리는 가족이 얼마나 많겠어요? 그 마음을 너무 잘 아니까, 치료비 걱정이라도 덜어드리고 싶었어요. 제 딸이 저를 철들게 했어요"

자신의 고통을 과장하지 않고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것. 그 태도로 나눔을 실천 하는 것이, 자신이 계속해야 할 일이라 그는 생각한다. 그래서다. 장사 수입이 이제 없는 그는 가게를 이어받을 아들에게 수입 일부를 건네받아 소소하게라도 기부를 이어갈 생각이 다. 나눔으로 물드는 그의 황혼이, 맑은 날의 노을처럼 눈부시다.

 

 박미경  |  사진 임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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