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가만히 보고 있자면 마치 나누기 위해 사는 사람만 같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에도, 폭설이 내려 세상이 꽁꽁 얼어붙은 한겨울에도 그는 도통 쉴 줄을 모른다. 봉사를 시작한지 30여 년,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음에도 그는 여전히 가장 앞장서서 고된 일을 도맡고 있었다.



나눔 그 자체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 - 제15회 본상 임영길 씨 관련이미지 1



무엇이든 나누는 송파구 ‘큰 손’

7월의 마지막 화요일. 아침 여덟 시가 채 못된 시간임에도 몇몇 어르신이 한 건물 앞을 서성거린다. 입구에 ‘코로나 확진 증가로 부득불 농산물 나눔 행사를 못 하게 되었습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음에도, 아쉬운 마음에 발걸음이 쉽사리 떨어지질 않는 모양이다.
“거리두기 4단계 때문에 나눔을 중단하니 오지 마시라고 해도, 코로나 걸리면 진짜 큰일 나신다고 협박조로 말해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오셔요. 저라고 어떻게 아쉽지 않겠어요. 농산물도 나눠드리고, 식사도 챙겨드리고 싶은데 이런 상황이 참 안타깝고 진력이 나네요.”
비영리 단체 ‘양푼속사랑회’를 운영하는 임영길(79) 씨의 얼굴에 근심과 걱정이 묻어났다. 2005년부터 이어온 무료급식이 이렇게 장기간 중단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예전 같았다면 줄을 선 어르신들로 가득했을 골목길. 혼자 사시거나 생활이 어려운 어르신들이 모여 맛있게 음식을 드시고 대화도 나누며 웃음꽃을 피웠을 양푼속사랑회 사무실이 왠지 쓸쓸해 보인다.

“매주 화·일요일과 공휴일에 무료급식을 했어요. 식사뿐만 아니라 빔프로젝터로 재미있는 영상도 보여드리고, 노래 교실도 열어드리고, 댁으로 돌아가실 때는 한 보따리씩 식자재를 싸서 보내드리니 참 좋아들 하셨죠. 길 건너 석촌동에서부터 경기도 저기 먼 데서 오시는 분까지 대략 150명 정도가 오셨던 것 같아요. 골목길에 줄도 100명씩 서고 그랬거든요. 지난해 코로나19가 시작되고서는 농산물 나눔으로 대체했어요. 비닐봉지에 배추, 상추, 마늘, 양파, 고기, 생선 등 식자재를 한가득 담아두면 한 분씩 가지고 가는 방식으로요. 그마저도 거리두기 4단계 때문에 3주째 못하고 있어요. 그래도 사회복지시설 대상의 농산물 나눔은 계속 진행하고 있습니다.”

임영길 씨가 가락시장으로 떠날 채비를 한다. 양푼속사랑회 부회장 임채현, 이설희 씨를 포함하여 네 명의 봉사자가 함께 길을 나선다. 10여 분을 달려 도착한 가락시장. 경매가 끝난 지 한참이 지났음에도 시장에는 여전히 활기가 가득했다. 차에서 내린 그가 분주한 발걸음을 옮기며 봉사자들을 재촉한다. 폭염에 마스크까지 쓰고 무거운 짐을 나르다 보니 얼굴이 금세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굵은 땀방울이 뚝뚝 흘러내린다.

“가락시장의 여러 중도매인분이 농산물, 생선, 고기 등을 후원해주고 계세요. 요즘 같은 여름에는 채소들이 빨리 상할 수 있어서 빨리빨리 움직여야 해요. 다녀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거든요.”

경매장 곳곳에 ‘양푼속’이라는 글씨가 큼지막하게 쓰인 농산물 상자들이 사람 키만큼 높이 쌓여있다. 임영길 씨가 좋은 일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가락시장 중도매인들이 후원을 아끼지 않기 때문이다. 무, 쪽파, 부추, 감자, 고추, 시금치, 미나리, 버섯, 양배추, 피망, 양파 등 다양한 품목의 농산물을 적게는 서너 상자에서, 많게는 사십 상자씩 후원받는다. 후원 물품 중 일부를 승합차에 실어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송파구지회, 굿모닝케어노인전문요양원 등 가까운 거리에 있는 시설에 직접 전달하며 지구촌사랑나눔, 참좋은친구들 등 거리가 있는 시설에는 트럭으로 싣고 가기도 한다. 이런 방식으로 그가 식자재를 전달하는 곳만 70여 곳에 달한다. 홀몸 어르신, 소년소녀가장 등 소외이웃에 전달하고 있는 식자재 역시 후원받은 물품들이며, 가락시장의 중도매인뿐만 아니라 한 간편식 전문기업에서도 국, 반찬 등을 후원받아 곳곳에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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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큰돈이 들어오니 내 돈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해 5월, 지구촌사랑나눔을 찾아가게 됐어요.
이주민들이 차별받는 모습에 마음이 많이 쓰였거든요.
매월 150만 원가량의 돈을 음식 나눔에 쓰기 시작하니, 그제야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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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부터 이어온 한결같은 나눔

몹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먹고살 만한 날이 오면 소년소녀가장들을 물심양면 도우리라는 다짐을 하며 살아왔다. 그 꿈은 마침내 1988년에 이루어졌다. 어린이재단에서 추천받은 소년소녀가장 세 가정에 매달 5만 원의 후원금을 지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돈만 보내고 싶지 않았던 그는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동산에도 함께 놀러 가고, 졸업식에 찾아가 사진도 찍어주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20년간 그가 아버지처럼 돌본 소년소녀가장이 열네 명에 이른다. 그가 지금처럼 음식을 나누기 시작한 것은 사업이 크게 성공을 거둔 2000년의 일이다.

“장사가 잘 안돼서 2000년 1월에 품목을 양푼비빔밥으로 바꿨는데, 그야말로 대박이 터진 거예요. 갑자기 큰돈이 들어오니 내 돈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해 5월, 지구촌사랑나눔을 찾아가게 됐어요. 이주민들이 차별받는 모습에 마음이 많이 쓰였거든요. 매월 150만 원가량의 돈을 음식 나눔에 쓰기 시작하니, 그제야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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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외국인노동자의집에서 시작된 양품비빔밥 나눔처는 20여 곳으로 늘어났다. 나눔을 이어가다 보니 음식 말고도 필요한 게 많다는 것을 알게 됐고 생활용품, 김장김치 나눔은 물론 청소, 빨래, 집수리, 목욕 봉사 등으로 영역을 확대해갔다. 2005년에는 직접 양푼속사랑회라는 봉사단체도 만들었다. 힘을 보태주는 회원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봉사에 더욱 열정을 쏟게 됐다. 도움을 주는 곳 또한 늘어나면서 기부금영수증 발행과 봉사시간 인증이 필요해 2013년에는 사단법인으로 공식 등록도 마쳤다. 임영길 씨 는 회원들과 함께 송파구 27개 동에 거주하는 홀몸 어르신과 소년소녀가장 등에게 음식과 식자재를 매주 제공하는 한편 매년 연예인을 초청해 효 공연을 열고 설에는 떡국을, 동지에는 팥죽을, 겨울에는 김장김치를 나누는 등 다양한 행사를 열어왔다. 그뿐만 아니다. 2007년 태안 기름 유출, 2017년 청주 수해, 2019년 고성 산불 등 국가적인 재난이 일어난 지역을 찾아 급식 봉사도 실천해왔다. 그의 이러한 선행이 알려지면서 가락시장의 상인들, 사업가, 민속공연단 등 다양한 이들에게 도움을 받게 되었으며 제15회 우정선행상 본상 수상을 비롯해 송파구청장 표창, 국민포장, 서울특별시장 표창 등 다양한 봉사상을 받기도 했다.

“회원들이 후원금을 많이 주시지만, 늘 적자를 면하지 못하고 있어요. 사무실 월세 100만 원에 가스, 전기, 수도, 공과금, 봉사와 각종 행사에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거든요.
우정선행상 상금도 양푼속사랑회가 이곳저곳에 진 빚을 갚는 데 쓰고, 시설 충당과 운영비로 사용했어요. 저한테는 한 백 원 정도 썼으려나요. 하하하.”

자신을 위해서는 옷 한 벌 새로 살 줄 모르는 임영길 씨. 그런 그가 부리는 욕심이 있다면 소외이웃에게 나누어줄 물건을 하나라도 더 사고 얻는 것 정도다. 바람이 있다면 그저 지금처럼 나누면서 살고 싶을 뿐이라는 그의 말에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지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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