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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담 공유

클라리넷에 마음의 눈 떴지요...

작성자
이**
작성일
2000-10-17
댓글
0
조회수
761
악보는 손끝으로 읽고 연주는 가슴으로...6일 독주회
미 피바디음대서 첫 시각장애인 박사...모교 출강

“악보는 손끝으로 읽고, 연주는 가슴으로 합니다.”

10월 6일에 호암아트홀에서 열릴 클라리넷 독주회를 준비하고 있는 시각장애인 이상재(33·중앙대 음대 강사)씨는 분주하다. 이번 연주회가 5번째로 외국에서 한 연주회까지 합치면 12번째이지만 매번 새롭기만 하다. 11월에는 코리안 심포니오케스트라와 협연도 예정되어 있다.

그의 너무 밝고 쾌활한 모습을 보면 주변 사람들까지 얼굴이 환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눈은 안 보이지만 마음의 눈을 뜨는 것이 바로 음악이에요. 음악은 슬픔도 기쁨으로 바꿀 수 있는 마력이 있어요. 불행이란 어두운 그림자도 음악의 선율에 맡기면 환희와 희망이란 빛으로 승화시킬 수 있지요.』

그의 이력은 당당하다. 중앙대 음대 관현악과를 수석졸업하고 미국 3대 음악대학의 하나인 피바디 음대에서 클라리넷 연주 전공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당연히 140년 전통의 피바디 음대에서 97년 첫 시각장애인 박사라는 타이틀로 화려한 조명을 받았다. 98년부터 모교인 중앙대에서 강의를 시작해 99년에는 계원예고, 올해는 숭실대와 총신대·한세대에도 출강하고 있다.

출생당시부터 백내장 증세가 있어 시력이 약했던 이씨가 시력을 완전히 잃은 것은 10세 때. 7세 때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부터 시력이 급격히 떨어진 것이었다. 그런 이씨에게 희망이 생긴 것은 맹학교 중등과정에서 밴드부에 들어가면서부터다. 클라리넷의 오묘한 소리에 반해 중학교 3학년 때 본격적으로 음악을 할 것을 결심했다. 『학과공부에서도 1등을 놓쳐본 적이 없어 부모님과 선생님들이 모두 만류했어요. 사실 악보조차 볼 수 없는 상태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은 무모한 도전이었지요.』

부모님이 새로 장만해 준 클라리넷으로 각고의 노력을 한 그는 86년 중앙대학교 음악대학 관현악과에 입학했다. 대학 시절 그의 어려움은 컸다. 악보를 눈으로 볼 수 없어 일일이 점자로 바꾸어야 했다. 또 오케스트라 수업은 지휘자를 볼 수 없어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졸업때는 4.5점 만점에 4.02점이라는 높은 점수로 수석졸업의 영광을 안았다. 대학졸업 후 91년 미국 피바디 음대에 유학하여 클라리넷 전공으로 93년과 97년에 각각 석사와 박사를 취득했다. 그의 천성적인 밝은 면모는 유학시절에도 변함 없었다. 이씨의 기숙사 방에는 항상 미국인 친구들과 한국 유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피바디 카페’라고 불릴 정도였다고 한다. 『박사논문을 준비하던 마지막 6개월은 기숙사를 나와 주변 아파트에서 생활해야 할 정도였다니까요.』 이씨의 말이다.

하지만 선생님으로서 이씨는 조금은 엄격한 편이다. “강의를 할 때 학생들이 기대만큼 열심히 하지 않는 것 같아서 야단도 많이 치곤 하지요.” 그럼에도 그의 제자 사랑은 남다르다. “시각장애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연주자로 활동하는 선생님을 보면 존경심이 절로 나오죠. 공부에는 엄격하시지만 학생들이 개인사정으로 수업을 받지 못하면 개별적으로 불러서 반드시 보강을 해주시는 자상한 면도 있어요.” 그의 강의를 듣고 있는 총신대 교회음악과 3학년 최용기(24)씨의 말이다.

이씨가 오늘날 장애를 극복하고 훌륭한 연주자와 교육자로 활동하는 데는 2명의 여인의 힘이 컸다. 아들에 대한 헌신적 사랑을 보여준 어머니 조묘자(60)씨. 지난 97년 전국장애인부모대회에서 ‘장한 어버이상’을 받기도 했다. 또 4년이 넘는 연애기간 동안 편지와 전화로 이씨를 격려해 온 부인이 그를 음악가로 재탄생하게 만들었다. 이씨의 부인은 “처음 만났을 땐 부담감도 있었지만 곧 성실하고 믿음이 가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됐죠. 제 소망은 남편이 장애인 연주가로 주목받기보다는 훌륭한 연주가로 인정받기를 바라요”라고 말했다.

(금원섭기자 caped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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