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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담 공유

‘들꽃 온누리학교’

작성자
이**
작성일
2000-10-20
댓글
0
조회수
612
“2학년 박유정(가명)이에요. 중2때 학교를 그만두었지요. 친구가 좋아 놀기만 하다 가출을 밥먹듯 했고…, 또 학원폭력도 일으켰죠. 한 2년 방황했고 여러 학원을 옮겨 다니면서도 몇번 똑같은 문제를 일으켰어요. 그러다 어렵게 어렵게 검정고시에 합격해 이곳에 왔지요. 왠지 이번 만큼은 잘할 자신이 생겼어요. 여기서도 못버티면 끝이라는 심정이었죠”


“3학년 김종옥이에요. 공업고등학교에서 밀링을 만졌죠. 학교생활이 너무 밋밋하고 즐거움도 없어 1학기 동안 몇차례 학교를 빠져나왔어요. 그해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 개학식날 결석·조퇴·지각이 많다는 선생님 말에 ‘그냥’ 학교에서 나왔어요. 그날 이후 영영 학교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후 춤꾼이 되고 싶어 춤도 실컷 추었는데…. 벌써 3년이 다 되어가네요”


경남 마산시 진동면 태봉마을에 있는 ‘들꽃온누리고등학교’. 폐교된 초등학교의 낡은 건물에 3학년 13명, 2학년 17명, 1학년 6명 등 36명의 학생들이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고’ 있다.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 선생님이 싫어서(전현·3학년)’, ‘부모의 이혼으로 아예 고교 진학에 뜻이 없어서(도준형·2학년)’ 등등 학생 대부분은 일반 고교에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이다. 이들은 여러 사정으로 거리를 방황하다 어느 순간 정신차려 다시 한번 공부에 도전하겠다고 ‘들꽃’에 왔다.


‘들꽃’에서는 공부만을 강요하지 않는다. 사생활에 대해 심한 간섭도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학생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알아서 공부하거나 진로를 택한다. 특별한 아이만 1등을 한다고 여겼던 유정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1등을 해 기쁘다’고 말했다. 한때는 연예인을 꿈꿨던 종옥이는 이제 더 공부해서 산업디자인학과나 경영학과에 진학하고 싶다고 한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는 나머지 학생들도 어느 틈에 변화된 자신을 느끼며 날마다 새출발을 다짐하는 스스로에게 감사하고 있다.



# 열정 가득한 선생님들


김종우(38·체육), 장윤정(31·한문), 손보견(30·수학), 이동형(27·과학), 서운향(39·영어), 함순복(37·가사)씨 등 6명의 교사는 ‘거의 온종일’ 학생들과 함께한다. 이들 외에 8명의 비상근 교사들도 되도록이면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한다.


마산시에서 자동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농촌이기에 10대들이 즐길 만한 시설이 별로 없다. 들꽃에 오기 전 도시에서 노는 데 익숙해진 아이들로서 일과가 끝난 오후 4시 이후는 무료하기 짝이 없는 자유시간이었다. 입학한 지 몇달 가지 않아 그 무료함에 지친 학생들은 비로소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찾아나섰다.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은 아이는 교사들에게 과외수업을 부탁하고, 몸 가꾸기나 정서함양을 위해 운동을 하거나 독서를 하기도 한다.


“구속을 최소화하고 학교에 재미를 붙이도록 해 학생들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학교와 선생이 생각하는 학교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먼저 느끼게 해준다”는 장윤정 교사는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눔과 배려를 알게 해주며, 그 다음 학습동기를 부여해 자신감을 갖게 만드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는 게 없어요”라고 자신들의 역할을 애써 깎아내렸다.


김종우 교사는 “학부모들은 처음에 학생을 학교에만 있게 해달라고 하죠. 그러다 1년 잘 버티는 것 같으면 졸업장만 따게 해달라고 하고, 그 다음에는 지방대학에라도 갈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죠”라면서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몇명 있어 조만간 대학 합격자를 배출할 것”이라고 자랑했다.


그러나 교사들의 보수는 거의 없다. 개교하자마자 설립자가 손을 뗀 뒤 빚더미에 쌓였기 때문. 교육청에서 나오는 교사 1인당 30여만원씩 10명에 대한 보조금이 보수의 전부다. 그러나 ‘학생들의 미래를 위하여’라는 사명감에 3년째 젊음을 바치고 있다.


# 절망 끝에서 찾은 쥐구멍


36명의 학생들과 14명의 선생님들은 요즘 마음이 답답하기만 하다. 학교 문을 닫아야 할 형편에 놓였기 때문.


1997년 말 학교 설립 준비를 할 때 그 당시의 법에 따라 연간 2천4백만원에 3년 계약으로 폐교를 임대했지만 설립자가 개인사정으로 운영을 포기했다. 그 이후 첫해 임대료만 겨우 냈을 뿐 지금까지 이태째 임대료를 내지 못했다. 지난 6월 건물주인 마산시교육청은 임대 만료 통보를 보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숙사 짓고 어쩌고 하느라 끌어들인 사채 4천만여원의 이자도 계속 늘고 있는 상태다. 젊은 교사들은 3년간 노력을 바친 학교를 지키기 위해 교육청에 사정도 해보고 독지가를 찾아 서울로, 부산으로 쫓아다니며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그러다가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개교 무렵부터 학교에 자주 들르던 경남대 양운진 교수가 후원회를 결성, 학교살리기 운동을 펼친 덕택에 일단 급한 불은 끈 상태다. 또 체납 임대료만 갚으면 재계약때 과거 임대료의 10분의 1 수준으로 학교를 빌려쓸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었다. 장기적으로는 학교법인으로 전환하여 운영재정의 결손분을 전액 국가로부터 보전받을 수 있다는 ‘쥐구멍’도 알아냈다.


다시 공부가 하고 싶은 학생들. 이들을 받아들여 무보수로 헌신하고 있는 ‘들꽃온누리학교’의 선생님들. 김교사는 “이 고비만 잘 넘기면 내년부터는 더 나은 환경에서 보다 전문화된 교육을 학생들에게 시킬 수 있다”며 교육에의 열정을 내비쳤다.


-[취재수첩]“임대로 못내 폐교위기…들꽃학교를 살려주세요”-


“세상이 각박하다곤 하지만 청소년 교육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아직은 많은 것 같아 고맙다”는 경남대 환경공학과 양운진 교수(52). 그는 지난 9월 초 들꽃학교가 처한 절박한 사연을 경남도와 마산시 교육청, 그리고 마산시청과 시의회 등 각 행정기관의 홈페이지와 민원실에 올렸다. 그와 동시에 들꽃학교 후원회를 조직해 독지가와 시민들을 상대로 ‘들꽃학교 살리기 모금운동’에 들어갔다.


10년 넘게 마산지역에서 환경운동과 청소년 교화사업을 펼쳐온 양교수는 들꽃학교 설립 취지에 동감해 자주 학교에 들렀다. 밤낮 없이 고생하는 교사들에게 저녁을 사기도 하고, 학생들과 대화하기 위해 함께 캠핑을 가기도 했던 양교수의 학교 살리기 노력은 금세 성과를 드러냈다. 지역신문에 기사가 나가면서 지난 9월 중순 이름을 밝히지 않은 독지가 두분이 2천만원과 1천만원의 거금을 각각 내놓았고 뜻있는 시민들이 1백만원부터 7,000원까지 줄지어 성금을 보내왔다. 그렇게 모인 돈이 현재 3천5백여만원. 이 돈으로 체납 임대료의 일부를 갚았다.


들꽃학교 선생님과 학생들에게 큰 힘이 되긴 했지만 아직은 체납된 4천8백여만원의 임대료에도 못미치는 형편. 학교 설립 준비부터 학교와 운명을 같이했던 김종우·장윤정씨 등 여러 상근 교사들이 3년간 학교 운영을 위해 끌어들인 사채도 4천만원이 넘는다. 우선 발등의 불격인 체납 임대료만 해결한 다음 조만간 학교 발전을 위한 2차 모금에 들어가야 할 형편이라는 것이 양교수의 말이다.


예금주 들꽃학교(양운진) 경남은행 570-22-012-5793

/마산/조현석기자 chs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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