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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김명호씨, ''사랑의 전령사''로 제2인생 px,

작성자
이**
작성일
2000-11-29
댓글
0
조회수
445
"장애판정을 받고 나서야 장애인을 이해하게 됐죠. 그때부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92년 1월 뇌출혈로 쓰러져 언어장애와 신경마비증세를 겪고 있는 2급장애인 김명호(44.서울마포구망원2동)씨는 같은 동네 20여 장애인가구를 돌보는 ''사랑의 전령사''다.
주류회사 영업과장으로 남부럽지 않게 살다가 식당 허드렛일 등을 하는 부인의 일정치 않은 수입으로 생계를 꾸리게 됐지만 "주변의 장애인을 이해하고 더불어 살 수 있는 것만도 큰 기쁨"이라고 김씨는 강조한다.
"TV에서 장애인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사는 가정을 소개해 직접 가봤더니 마침 아들의 친구집이더군요. 그들의 눈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도 안타까웠습니다."
김씨는 이 일을 계기로 95년 장애인들을 돕는 ''사랑의 재활터''란 모임을 만들었다.
그는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을 집으로 데려와 마비된 몸을 주물러주면서 ''나도 2급장애인인데 이렇게 좋아졌다''며 자신감을 불어넣는 일에도 열심이다. 또 뇌출혈로 쓰러져 하반신이 마비된 정선모(57)씨의 아들(23.대학생)이 등록금 문제로 휴학하려 했을 때 모방송국에 사연을 소개해 성금 400만원을 받아 줬다.
김씨는 요즘엔 근이영양증을 앓아 혈혈단신으로 시한부 삶을 사는 시인 최영자(55.여)씨를 돌보는 게 주요 일과다. 96년 최씨를 처음 만난 뒤 입원비를 내준 김씨는 "얼마 남지 않은 삶인데…"라며 끝까지 보살핌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장애인들이 재활 끝에 다소 나아진 뒤 마음의 문을 열고 다른 장애인의 휠체어를 밀어줄 때 보람을 느낀다"는 김씨의 가장 큰 소망은 ''사랑의 재활터''를 사회복지법인으로 만드는 것. 성치 않은 팔로 주물러주고 목욕을 시키는 것만으로는 아쉬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라고 한다. 지난해 6월 심장마비로 응급치료를 받아 소생했던 김씨는 "죽을 고비를 2번씩이나 넘기니 욕심이 없어졌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이진수기자 leejs@sg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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