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menu-icon
mobile-menu-icon
close
close

미담 공유

불량청소년들의 ‘대부’최연수

작성자
한**
작성일
2000-12-27
댓글
0
조회수
493
크리스마스를 나흘 앞둔 지난 21일 오후 12시15분. 서울 송파구 마천동, 한 교회 건물 1층의 작은 사무실에는 한껏 멋을 낸 청소년 예닐곱명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자 이제 출발하자. 가서 맘껏 스트레스를 풀고 신나게 놀자”라는 한 사내의 말에 이들은 몸을 일으켜세웠다.


마천동 일대에서 ‘노는 아이들의 대부’로 불리는 최연수씨(38). 그는 지난 10년간 낡은 자전거를 타고 ‘길거리 상담소’를 운영하며 거리에서 방황하는 아이들을 부지런히 만나왔다. 오늘은 최씨에게 10여차례 ‘약물중독 집단상담’을 받은 모 중학교 3학년생들이 상담의 마지막 코스로 1박2일간 놀이공원 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고향 전남에서 영어교사였던 최씨가 서울에까지 올라와 청소년상담사가 된 것은 어찌 보면 우연이었다. 최씨가 상경한 것은 1991년 초. 결혼을 약속한 여인의 직장이 마천동에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학원강사·과외선생 등을 하며 그럭저럭 밥벌이를 했다. 하지만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어 6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뭔지 모를 갈증을 채워줄 다른 일을 찾으면서 소일도 할 겸 서울YMCA 청소년독서실에 나가 책을 읽었다. 어느날 독서실 원장이 불우청소년을 위한 야학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최씨는 흔쾌히 응했다. 짧은 시간에 야학 아이들과 있는 말 없는 말 나누는 사이가 되면서 마천동 일대에 유난히 불량청소년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능력을 인정한 지역YMCA가 청소년지도사로 일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그는 불량청소년들의 ‘친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이곳 마천동은 서울의 그늘이자 외딴섬 같은 곳이죠. 아이들도 마찬가지예요. 80년대 서울 변두리에 있던 판자촌들이 집단으로 이사해 왔지요.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이라 막노동, 파출부 등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부모 밑에서 아이들은 생활해왔죠. 이들은 보통가정보다 이혼이나 가정불화를 자주, 많이 겪을 수밖에 없지요. 그러니 중간에 학교를 그만두는 아이가 많이 생기죠”


최씨는 아이들과 가까워지려고 무작정 그들의 아지트로 찾아갔다. 어머니가 가출하고 아버지가 일하러 나가 며칠씩 돌아오지 않는 집은 예외없이 이들의 모임터였다. 학교를 그만둔 아이와 수업 중간에 도망쳐온 아이들이 이런 곳에 모여 본드와 부탄가스를 마시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는 것. 처음에는 문을 두드리고 빵과 우유만 넣어주었다. 몇번 똑같은 일을 겪으면서 아이들이 먼저 ‘아저씨는 누구냐’고 묻거나 ‘잠깐 들어오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굳게 닫힌 마음의 빗장을 풀기 시작했다.


“청소년들은 감자뿌리와 같아요. 자퇴생은 자퇴생끼리, 부모가 이혼한 아이는 또 그들끼리 아주 쉽게 공감대가 형성되죠. 가장 문제가 있는 아이와 잘 지내면 그 옆에 있는 아이들도 줄줄이 엮이듯 올라와 저와 친하게 되죠”


그 다음 이들의 불만과 욕구를 파악해 이들이 홀로 설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학교로 돌아가고 싶은 아이와는 함께 공부하고, 일하고 싶다는 아이에게는 직업훈련소에 부탁해 기술을 배우게 했다.


최씨는 또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우쳐주기 위해 여러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지난 9월 축구팀을 만들어 동네 조기축구회 등과 정기적으로 시합을 갖게 했다. 매주 토요일 오후 축구시합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어른보다 잘하는 게 있다는 자부심과 또 남들로부터 인정받는 즐거움을 심어주었다. 월말에는 피자나 과자 등을 싸들고 정신지체아나 자폐아, 미아들이 모여 사는 재활원·고아원 등을 방문한다. 아이들에게 음식을 먹여주고 함께 놀아주며 봉사의 기쁨을 누리게 한다.


“밑바닥 아이들은 건물 번듯한 청소년문화센터에는 절대 모이지 않아요. 또 상담소를 차려놓고 무작정 아이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려도 안되죠. 어른들이 관심을 갖고 이들을 찾아다녀야 해요”라고 말하는 최씨. 지난 8월 한 교회 건물 1층을 임대해 ‘한빛청소년대안센터’를 열었다. 24시간 문을 열어놓는 이곳은 어느새 출출할 때 라면이라도 끓여먹으며 대화할 수 있는, 청소년들의 작은 쉼터가 되고 있다.


한해가 저물어가는 세모의 거리. 들뜬 기분에 집을 나와 길에서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혹시 없을까 걱정하는 최씨는 오늘도 자전거를 타고 시린 손을 불어가며 판자촌 골목길을 누비고 있다.


-[취재수첩]중학생 위한 ‘대안학교’꼭 필요하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의 문제는 고교생보다 중학생층에서 더 심각하다고 최연수씨는 말한다.


“중학생들은 정말 갈 곳이 없어요. 대부분이 PC방이나 오락실로 몰려다니며 돈을 뜯거나 패싸움을 하죠. 직업을 가지려 해도 잘해야 주유소 주유원이나 패스트푸드점 배달원이 고작이죠. 심한 경우 남학생은 삐끼, 여학생은 원조교제를 하다 술집종업원으로 빠지곤 해요”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학교를 그만둔 중학생은 1만8천여명. 4만7천여명이 그만둔 고교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길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한다.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복학을 받아주는 학교가 없어 많은 아이들이 거리를 헤맨다. 간혹 복학을 해도 심한 왕따를 당하거나 교내 문제가 일어났을 때 배후주동자로 찍혀 대부분 다시 거리로 내몰린다고 한다.


최씨는 중퇴 중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대안학교’라고 말한다. 하지만 중학생들을 위한 대안학교는 거의 없다. 고교생 대안학교는 정부 지원금을 받는 반면 중학과정은 의무교육이라는 이유로 지원을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중학 대안학교에 대한 지원이 불가능하다면 인문계 고교의 실업반처럼 학적은 본교에 두고 외부 교육기관에 위탁교육을 시키는 등 학교부적응 중학생을 위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최씨는 주장한다. 최씨의 꿈은 지금 운영중인 청소년대안센터를 대안교실로, 한걸음 더 나아가 대안학교로 확대해나가는 것이다.


/조현석기자 chsuk@kyunghyang.com/

첨부파일
비밀번호 입력
본인확인을 위해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비밀번호 입력
본인확인을 위해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