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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담 공유

''그림같은 마을'' 절로 그림이 된다,

작성자
별**
작성일
2001-06-07
댓글
0
조회수
881
단편영화 ‘강원도의 힘’은 98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되는 등 화제를 모았고 특이한 제목만큼 여운을 남긴 작품이었다. 관객들은, 강원도를 찾아가 지친 삶을 충전시킨 후 서울로 돌아가는 영화속 주인공들을 통해 강원도의 힘을 보고 느꼈다. 강원이 뿜는 힘, 그건 원시의 순결이고 자연의 순수이다. 그 힘을 받으려 많은 예인들이 강원도로 들어갔다. 강원도는 그 어디를 잘라내 펼쳐도 한 폭의 그림이다. 그래서인지 어느 지역보다 미술인들이 많다. 서울에서 승용차로 5시간 거리인 강원도 인제. 내린천(內麟川)을 따라 2만5천여명의 군민이 거주하는 이곳의 문화운동은 인제미술인회, 미술교육연구회, 평생교육원 등에 소속된 미술인들이 이끌어가고 있다. 이들은 화구나 재료를 구입하러 가끔 서울에 들를 뿐 작품활동 무대는 때묻지 않은 인제이다.


1988년 3월 창립된 인제미술인회(http://user.chollian.net/~hwaghong)는 이제 21명이 모여있는 따뜻한 둥지이다. 인제미술인회 회장 최용건씨는 “회원 대부분이 외지에서 오신 분”이라며 “경치가 좋고 오염되지 않은 시골이어서 서울에서 온 작가들이 한눈에 반해 정착을 결심하곤 한다”고 전했다. 인제미술인회는 매년 두 차례의 전시를 갖고 학생 사생실기대회도 여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봄에는 인제군 순회 회원전, 가을에는 인제군 합강(合江)문화제 기념 회원전이 열린다. 주민과의 일체감을 위해 인제군내 면(面)단위의 장날에 맞춰 전시를 갖고 있다. 역동적인 장터 속의 정적인 미술전시회, 이 파격은 얼마나 인간적인가. 얼마나 흥겨운 축제인가.


농군화가로 알려진 회장 최용건씨(52)는 96년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에 정착했다. 대학 졸업후 서울 은평구 대성고교 미술교사로 근무하던 그는 고향인 춘천으로 옮겨 10년동안 강원대에서 강사로 활동했다. 그러나 ‘춘천도 서울만큼이나 오염됐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어’ 물맑고 산좋은 인제로 들어왔다. “다시 춘천이나 서울로 돌아가기 싫습니다. 이제야 보금자리를 찾았어요. 감자나 옥수수를 키우고 파종과 수확의 기쁨을 맛보며 그 순간에 확인한 기쁨을 화폭에 담고 있습니다. 그게 곧 행복아니겠습니까”


인제미술인회 부회장 남진현씨(49)는 인제읍 가리산에서 산이랑화실을 운영하는 한국화가이다. 대한민국미전 입선, 강원도전 특선, 한국서화대전 초대작가인 그는 96년 이곳에 정착했다. 부산에서 장교로 복무하다 대위로 예편한 후 30세때부터 화업에 들어섰다.


“외지에서 이주한 예술인들의 경우 정착 초기에 지역민들과 갈등을 빚기도 합니다. 하지만 농사 일을 같이하고 함께 고민하면 금방 이웃사촌이 되지요”. 남씨도 민박을 치고 양봉을 해서 살아간다. 생활은 넉넉지 못해도 마음만은 부자다. “서울도 잘 나가는 몇몇 작가들을 제외하면 모두 빠듯한 삶을 살고 있지요. 무엇하러 피곤한 도시생활에 연연해하는지 모르겠어요. 서울에는 부모님을 뵈러 갈 뿐이지요”


인제미술인회원 중에는 지역특성상 군인가족들이 눈에 띈다. 숙명여대를 졸업한 박청미씨는 군인 남편을 따라 이곳에 온 후 인제미술인이 되었고 2년후 남편이 예편하면 이곳에 정착하기 위해 진동리에 그 터를 구입했다. 경남대를 졸업한 서양화가 김종희씨는 소령인 남편이 최근 대전으로 떠났지만 자신은 이곳에서 미술학원을 경영하며 작품활동에 여념이 없다.


98년 폐교가 된 죽전초등학교를 자신의 작업실로 보수한 후 학교에 입주한 김영덕(44)·변명숙(39)씨 부부는 이곳 주민들에게 인기가 높고 신망도 깊다. 김씨(평생교육원·인제교육미술관 관장)는 인제에서 15년간 미술교사로 재직하다 이곳에 정착했다. “실컷 작업하고 싶어 폐교를 임대했는데 취지와 달리 주민들의 미술교육에 매달리느라 개인작업은 겨울에나 조금 할 뿐”이라고 투정이다. 하지만 주민들의 그림보는 눈이 떠가는 것이 자랑스러운 듯 미소를 문다. 이들에게 서울은 애증이 교차하는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 그래서 그곳 소식을 물고오는 서울 손님들이 반갑다. 김씨의 강원대 후배인 이재언씨(43·미술평론가)도 그들 중 하나이다. 물 뜨러온다는 핑계로 방문하지만 이들의 평생교육원 프로그램을 자문해주고 서울의 각종 정보도 풀어 놓는다. 일테면 세상 돌아가는 일들을 해설을 곁들여 알려주는 ‘삶의 도우미’다.


지난 3월 춘천에서 인제군 한계리로 이주한 나무조각가 이권형(35)·고보나(33·한계초등학교 교사)씨 부부도 3주일전 어렵게 작업실을 마련했다. 영감을 얻을 뭔가 있을 것 같아 한계령근처를 고집하다보니 도무지 빈집이 없어 애를 먹었다.


인제 평생교육원 강사이면서 서울로 출강하는 판화작가 김영훈씨(30)는 “이만한 작업공간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냐”면서도 “서울과 멀어 답답하다. 정보교환이 원활치 않아 왠지 뒤처지는 느낌”이라며 서울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을 털어 놓는다.


미술교육연구회 회장 윤재복씨(40)도 정보교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91년 설립된 미술교육연구회는 매년 전시회를 개최하고 미술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학교교육현장에 투입될 새로운 실기 기술을 배우는 보람도 있지만 지역의 교육현장에 있는 미술교사들끼리도 모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야성이 숨쉬는 자연의 화폭에 꿈과 사랑과 정(情)을 채색하는 미술인들. 그들은 너나 없이 자연을 그리려 갔다가 자연인이 되어가고 있다.


〈유인화기자 rhe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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