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수 엄마... 그녀는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누구의 아내도, 누구의 엄마도 아닌 사람, 용수 엄마. 하지만 그녀의 남편은, 그리고 그녀가 끔찍이도 사랑하던 두 아들은 여전히 엄마의 냄새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세 가족이 앞으로 건강하게 웃음을 잃지 않는 삶을 살기를 이웃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바랍니다.
암이라고 했던가! 6개월밖에 못 산다던 당신의 병명을 듣고 대뜸 의사의 멱살을 잡고는 "당신 그 말에 책임질 수 있어? 6개월? 당신, 이 사람이 6개월 더 살면 그냥 두지 않을테야!" 그렇게 의사선생님께 화를 냈었는데... 그러나 정말 당신은 그런 나를 무색하게 만들기 위해 작정이라도 한 듯 정확히 6개월을 채웠지. 상이며, 그릇이며 잡다한 것들을 가지고 노점상을 시작하여 이제는 제법 가게다운 가게 하나 얻어 조금 살만해지는가 했더니 당신 그렇게 무정하게 가는구려. 퉁퉁한 살집이 있어 늘 살 좀 빠졌으면 하던 당신! 병원에 들어가기가 무섭게 당신은 참으로 야위었지. 노점상을 할 때도 그렇게 야위진 않았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모든 게 다 아쉽고 왜 좀더 잘해주지 못했나 하는 아쉬움만 남지만... 당신 그거 기억할려나... 당신 떠나기 얼마 전, 야외로 한 번 나가보고 싶다 그래서 친구내외와 바람쐬고 왔던 거. 고기 먹고 좋은 공기 마시고 모처럼 남들과 같은 호사를 누려봤지만, 당신 오는 내내 내게 불만이었지? 근사한 까페 들어가서 커피 마시고 싶다고, 그깟 커피값 좀 비싸면 어떠냐구, 나 죽으면 끝인데 왜 그깟 커피값 아끼느라 궁상 떠느냐구... 당신 모를거야. 난 그 때까지도 당신 포기 안했기 때문에, 나중에 다 나아서 우리 둘만 오붓하게 와서 옛날 생각하는 때 있으려니 그랬던 걸. 그리고 솔직히 5개월 동안 병원비 나가는 걸 보니 앞으로 얼마가 될 지 모르는데 그깟 커피값에 왜 당신 약값을, 왜 당신 병원비를 버려야하는지 난 이해할 수 없었거든. 하지만, 이제는 후회하고 있지. 좀더 근사한 곳 데려가지 못하고, 나름대로 우리의 얘깃거리를 더 만들지 못한 이 무능력한 내 자신이 못나서 오늘도 소주잔을 기울인다네. 용수 엄마! 나 아침이면 두 아들녀석 도시락 꼬박꼬박 싸서 보내주고 있어. 걱정하지 마. 그리고 가게도 그럭저럭 되어가고 있어. 처음엔 당신 생각나서 도저히 이 가게 있기 힘들겠다 싶었는데, 그래서 가게 옮기고 멀리 이사가야지 했는데... 그게 아니네 이제... 당신이랑 첨으로 마련한 곳인데, 내가 여길 어떻게 떠나! 그리고 단골들도 여전히 우리집에 오고, 당신 49제도 잊지 않고 찾아와 준 이웃들이 있는데, 나 아무래도 여기 못 뜰 거 같아. 괜찮겠지? 그리고 당신 거기서 내 생각 가끔만 해주면 안될까? 나랑 사는 동안 고생도 지겹게 많이 했지만, 그래도 살 붙이고 산 햇수가 있으니 나 조금만 기억해줘. 나도 서서히 당신 보내줄게, 그때까지만 나랑 우리 아이들 생각해줘.
어허... 오늘 소주가 하나도 안 쓰네. 취하지도 않구, 정신만 더 말짱하네. 이 잔이 마지막 잔이야. 당신 내 앞에서 같이 잔 좀 부딪혀주면 안되나?
============================================================ 용수 아빠는 그렇게 눈물 한 방울을 더 보태어 마지막 잔을 마주했습니다. 그는 이제 서서히 용수 엄마를 놓아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저 세상 가서는 좀 편하게 살라고, 여기서 많이 아프다가 갔는데 거기가서는 아프지 말라고... 세 식구 모두 이제 눈물 흘리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야만 용수 엄마도 편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