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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담 공유

정년퇴임 하는 날까지 게시판에 글을 써넣으시는 선생님

작성자
신**
작성일
2003-02-24
댓글
0
조회수
4445
우리학교는 실업계 고등학교로서 미래의 공업역군을 배출, 회사로 나가기 전 직업교육을, 올바른 직업의식을 갖춘 기능인을 양성하는 학교이기에 어느 것보다도 예절과 정서함양이 특히 요구됩니다.
기계를 다루고 편성과목이 공학분야에 많은 비중을 두기에 자칫 삭막, 황량해지기 쉬운 환경에 처할 수 있는 소지가 있기에 많은 선생님들께서 이러한 것들을 수업시간에 강조하시지만 어느 것보다도 더 학생들 마음속으로 파고드는 것이 있기에 소개하려 합니다.

작지만 항상 얼굴 가득히 미소를 머금은 인자하신 선생님.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살아가던 시대에 동네의 인자하신 아저씨 같은 훈훈함을 지니신 선생님.
한 단어로 사람을 설명하기란 참 어렵겠지만 누구나 '온화'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되는 선생님을 이외에도 많은 수식어로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과목을 담당하시며 그동안 수집하셨던 자료와 교직생활에서 느끼셨던 단상들과 , 그 외에도 인생에서 우러나온 경험담에 이르기까지 실로 많은 다방면의, 삶이 녹아드는 누구나 보아서 느낌이 오는 정말 주옥같은 글을 게시판에 직접 붓으로 쓰셔서 학생들에게 전파하셨던 선생님의 소중한 마음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조정남선생님.
사법고시를 준비하시다가 뒤늦게 교직에 발을 들여놓으신 선생님은 교직생활을 하시는 동안에도 줄곧 책에서 멀어지지 않으시며 끊임없이 자기 연찬을 하고 계십니다.
이렇듯 모든 경험과 열의와 노력이 올올이 맺혀진 선생님의 수업에서는 뜨거운 열기가 느껴집니다. 선생님의 수업에서는 동서양을 넘나들며 시대의 조류를 섭렵하고 동양의 심오한 철학이 전개되며 한편으론 합리적인 사고와 이성이 설명되어지고 심오한 세계가 끝없이 펼쳐집니다.
수업을 마치시고 교실을 나서면서 잠깐동안 어떤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으로 낮은 기침을 한 번 하시는 모습에서도 관록이 묻어 나오는 선생님.

교무실에서도 늘 편안함을 유지 하시면서도 젊은 선생들의 우스개 소리에 넌지시 분위기에 어울리는 유머를 한 마디 던지시는 인자함이 깃든 선생님.
그 유머에는 상상치 못할 인생이 순간적으로 펼쳐지며 숨겨둔 선생님의 끼가 전해집니다.
항상 옥편을 펼쳐 놓으시고 알고 있는 한자인 듯 한데도 정성 들여 몇 번이고 써 내려가며 침잠하시는 선생님.
반별로 소풍을 갈 때에 편성된 학급에 음료수 서너박스를 선뜻 내놓으시는 선생님.
어떠한 수식으로 선생님을 표현할 수 있겠냐마는 선생님의 교직생활에서 이 한 가지를 잊을 수는 없습니다.

선생님은 교직을 마감하시는 순간까지도 한결같이 학생들에게 끊임없는 메시지를 전해주셨습니다.
-네 인생에 시험이 전부는 아니다
시험을 치르는 아이들에게 압박감을 훌쩍 벗어나게 한마디를 전하시는가 하면
-선배에게서는 지식과 경험을 후배에게서는 감각을 배우라는 서양속담을 게시하면서
이것은 남에게 무엇인가를 배워 익히려고 할 경우에 일종의 전술이라고 할 수 있는 학습태도를 가르치고 있다라고 지그시 선생님의 속내를 드러내놓으시며
-Know yourself! (너 자신을 알라!)며 불쑥 소크라테스를 던지시는가 하면
-나는 자랑스런 기공인으로 학교의 명예와 긍지를 존중한다는 자부심을 슬쩍 심어주시고
-나무는 조용하기를 원해도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 자식이 효도를 하려고 원해도 부모는 기다리지 않는다라며 효(孝)를 말씀하시기도 하고
-우공이산(愚公移山)
문득 고사성어를 던저 놓기도 하시며
우리학교에 재직하시는 4년을 교문을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게시판에 한결같이 선생님이 직접 붓으로 큼직하게 써놓고 계십니다.
학생들이 처음에는 그냥 우리를 구속하려는 글이겠지, 혹은 호기심으로 읽다 '에이, 뭐!'하였지만 차츰차츰 재미있는 글을 접하기도 하고 정말 마음에 와 닿기도 하면서 이제는 학교생활에서 가장 소중한 배움터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우울한 날은 우울한대로,
시험을 못 본 날도 게시판에서 다음을 준비하는 다짐을 갖게되고
혹은 인생의 심오함을 느끼기도 하고
사회, 문화, 속담, 명언, 영어에서 한자, 고전에서 십대들의 사고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소재로 자칫 경직되기 쉬운 학교생활에서 학생들이 선생님의 게시판을 접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으로 파고들어 가고 있습니다.
교사들도 처음에는 학생들이나 보는 거지 뭐! 이런 식의 반응이었지만 차차 읽다보니 다음주에는 어떤 내용일까 궁금해하며 저 역시 그런 매력에 빠져들어 월요일 출근하며 게시판의 내용이 기다려지고 선생님의 따사로운 손길을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한 주일이 시작되면서 혹 선생님과 마주칠 때면 정감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서는 다음주엔 어떤 내용을 구상하고 계실까하는 궁금함도 갖게됩니다.

이렇게 하루하루 지나는 동안 이 게시판은 학교의 명물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아름다운 사랑나누기는 학생에게 교사에게 정말로 재미있게 혹은 겸허함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도 전해드려 봅니다.
다만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앞으로 누가 게시판을 채울 것인가라는 걱정에 허전함을 느껴봅니다.
비록 선생님은 정년퇴임을 하시지만 선생님의 제자사랑, 사람사랑, 숭고한 마음은 우리 학생, 교사에게 영원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

-용기란 두려움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다
선생님이 써놓으신 글 앞에서 미소짓는 모습을 마음속으로 영원히 담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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