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menu-icon
mobile-menu-icon
close
close

미담 공유

서민의 겨울 데우는 ‘情’을 나른다,

작성자
운**
작성일
2003-11-28
댓글
0
조회수
2091
경향신문 2003.11.27(목)

서민의 겨울 데우는 ‘情’을 나른다

자꾸만 외투 속으로 움추러들고 싶은 초겨울 새벽이지만 분주히 연탄을 뽑아내는 윤전기의 굉음과 근로자들의 웃음소리가 한기를 녹인다.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에 위치한 삼천리e&e는 금천구 시흥동 고명산업과 함께 서울에 남은 마지막 연탄공장이다. 1968년에 태어난 삼천리e&e는 하루 평균 20만장의 연탄을 생산한다. 버튼 하나면 언제든 손쉽게 뜨거운 물을 쓸 수 있는 곳이 있는가 하면 아직도 300원짜리 연탄 한장에 의지해 겨울을 보내는 서민들이 많다. 특히 IMF 이후 연탄을 찾는 독거노인과 서민들이 꾸준히 느는 덕에 오래된 윤전기가 그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다.

부인 한성녀씨(46)와 함께 연탄을 배달하는 박명석씨(47). 강원 인제가 고향인 그는 맨몸으로 상경, 보증금 50만원의 사글세방에서 시작해 연탄 배달로 내집 마련의 꿈을 이뤘다. 네 식구의 자랑스런 아버지이자 ‘박명석 삼천리 연탄배달’의 사장이기도 한 그는 2.5t 트럭으로 전국을 누빈다. 하루 두차례 2,000장 가량의 연탄과 리어카를 싣고 배달을 하는 박씨에겐 나이 마흔에 있을 법한 그 흔한 뱃살도 없다.

“배 나올 시간이 어디 있어? 살 빼고 싶은 사람은 하루만 날 따라다니면 돼!”

22개의 구멍이 뚫린 연탄의 무게는 3.6㎏. 박씨는 연탄집게로 양손에 4개씩 한번에 8개를 나른다. 게다가 연탄을 필요로 하는 곳은 손수 리어카를 끌고 올라가야 하는 곳이 많다. 언젠가 아버지 일을 돕겠다고 따라나온 첫째딸 미영씨(20)는 고생하는 아버지 모습에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수도권 배달은 새벽 6시, 강원도 등지의 지방 배달은 새벽 2시부터 일어나 배달 채비를 갖춘다. 일요일 외 하루평균 12시간 이상 근무하는 박씨에겐 연탄이 그의 모든 것을 있게 한 ‘가보’ 같은 존재라고 한다.

부인 한성녀씨는 둘째아들 성보(17)를 낳고 남편 박씨와 함께 연탄 배달을 시작했다. 아이들의 아침을 제대로 챙기지 못해 미안해 하는 한씨는 출근 후 이들을 깨우는 안부 전화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처음 시집올 때만 해도 뜨거운 물이 귀해 머리도 자주 못감았는데 지금은 버튼 하나만 누르면 언제든 뜨거운 물이 나와. 그렇지만 연탄불에 바로 구워먹는 삼겹살 맛을 알아? 또 밥의 뜸도 잘 들여지고 빨래도 더 뽀얗고 하얗게 잘 삶아지고….”

점점 희미해지는 연탄의 온기에 한씨 또한 섭섭해지는 건 마찬가지. 무엇보다도 이들 부부는 연탄의 공급이 줄어듦에도 연탄을 계속 사용할 수밖에 없는 서민들의 시린 겨울을 걱정했다. 남과 더불어 하는 것이 ‘장사’라고 정의하는 한씨는 가장 중요한 영업 노하우로 ‘웃음’을 꼽았다. 고된 와중에도 밝게 웃을 수 있는 노하우를 물으니 이들 부부는 “평안한 가정” 때문이라며 여전한 웃음으로 입을 모은다.

그들의 일은 단순히 연탄 배달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연탄의 개수를 한눈에 알아 볼 수 있게 연탄을 쌓는 일도 신중해야 하고 빗자루로 뒷정리까지 깔끔히 마무리해야 한다. 이들 부부의 양손엔 연탄집게를 잡느라 20년 묵은 딱딱한 굳은살이 자리잡고 있다. 배달 후 연탄을 쌓고 뒷정리를 하기까지 단 한순간도 제대로 허리 필 틈조차 없다.

잠이 덜 깬 겨울. 이른 해돋이 시간이 가장 곤욕스럽다는 박씨는 “그럴 때면 마치 저승길에 가는 것 같다”고 말한다. 아침이 되자 어느덧 그의 콧등엔 이슬 대신 땀방울이 내려앉아 있다. 그는 “요즘 나이 들어 잘리면 갈 곳이 어디 있냐”며 자신의 이름을 건 어엿한 사업이 있음에 감사한다.

〈김진석·김은성기자〉
첨부파일
비밀번호 입력
본인확인을 위해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비밀번호 입력
본인확인을 위해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