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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담 공유

어느 미화원의 '사랑나누기'

작성자
운**
작성일
2003-11-28
댓글
0
조회수
2922
조선일보 2003.11.17(월) 16:37

[길] 어느 미화원의 '사랑나누기'

[조선일보 임호준 기자]

매월 말쯤이면 서울아산병원 사회복지팀 사무실에 수줍게 들어서는 손님이 있다. 8~9년째 이 병원 장례식장 미화원으로 일하고 있는 노란순(盧蘭順·54·서울 풍납동)씨다. 진회색 미화복을 입은 노씨는 1만원짜리 서너장이 든 흰 봉투를 직원 아무에게나 내밀고 말도 없이 사라진다.

2001년 12월부터 한번도 빠짐없이 매월 되풀이되는 모습이다. 조금 궁한 달은 3만원, 조금 후한 달은 5만원, 그렇게 노씨가 지금까지 낸 돈은 모두 92만원이다.

노씨는 지난 2000년 5월 폐암으로 남편을 잃었다. 강동구청 기술직으로 일하던 남편은 발병 3개월 만에 사망했고, 그러잖아도 어려운 살림은 더더욱 막막해 졌다.

치료비를 대느라 그나마 모았던 돈을 다 써 버렸고, 간병하느라 자신의 벌이까지 끊어졌다. 지금은 모두 결혼한 아들(28)과 딸(25)이 조금씩 벌어 보탰지만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100만원도 안되는 미화원 월급으로 생활하는 노씨에게 3만~5만원은 적은 돈이 아니다. 그런데도 ‘쥐꼬리 봉급’을 쪼개는 이유는 그때 그를 도와준 사람들 때문이다.

노씨는 “남편의 직장 동료, 동료 미화원, 성당 교우 등으로부터 많은 물질적·정신적 도움을 받았다”며 “어려운 처지의 사람에겐 작은 위로와 정성이라도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그때 절감했다”고 말했다.

노씨는 평생 공장일, 식당일, 파출부, 비누장사 등을 하며 가난과 싸워 왔다. 그렇게 번 돈으로 십수년 전부터 매년 어린이날, 추석, 설날에 강원도 태백의 한 고아원과 양로원에도 형편 닿는대로 돈을 보내고 있다. “그들이 나보다 더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솔직히 돈에 쪼달려서 어떤 때는 ‘이번에만 빼 먹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럴 수 없었다”며 “건강 때문에 돈을 벌 수 없는 사람도 많은데 나는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으니 감사한다”고 말했다.

(임호준기자 hjlim@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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