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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담 공유

끼니 거르는 곳마다 '사랑의 음식배달' 1년째 김형국씨

작성자
운**
작성일
2003-12-08
댓글
0
조회수
3737
"매일 5000명이 저를 기다립니다"

끼니 거르는 곳마다 '사랑의 음식배달' 14년째 김형국씨 - [조선일보 최현묵 기자]

김형국(52·수원시 정자동)씨의 일과는 새벽 5시에 시작된다. 수원 농수산물 시장과 서울 가락동 시장에 들러 상인들이 조금씩 건네주는 콩나물·배추·파·시금치·오이 그리고 백화점에 납품하지 못하는 흠집 난 두부 같은 음식물을 모아 승합차에 가득 쌓으면 본격적인 ‘배달’이 시작된다.

김씨는 혼자서 하루에 경기도 일원 70여곳을 돌아다니며 홀로 사는 노인이나 양로원 등의 시설에 음식을 배달한다. 그를 기다리는 사람을 찾아 경기도 일대를 돌아다니다 집에 돌아오면 이미 밤 11시. 평탄치 않은 결혼 생활로 인해 홀로 살고 있는 김씨가 지난 14년을 하루같이 해 온 일과다. 김씨 자신은 후원인 8명이 십시일반으로 보태주는 한 달 25~30만원으로 생활해오고 있다.

김씨는 1988년까지 화공약품 제조회사에서 공장장으로 근무했었다. 유독 화공약품 배합작업을 도맡아 하던 그는 진폐증을 얻어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그때 하나님과 약속했습니다. 병을 낫게 해주면 당신이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가겠다고….”

그즈음 정신없이 일에만 매달려 살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몸이 아파 쉬는 동안 자주 들렀던 공원, 그곳에는 점심도 못 얻어먹고 애꿎은 마른 담배만 피워대며 삼삼오오 모여 있는 노인들이 있었다. 굶는 노인들의 모습은 내내 그의 마음을 괴롭혔다고 한다.

진폐증 진단을 받은 후 6개월 만에 기적처럼 완쾌됐고, 김씨는 자신과의 약속을 실천키로 했다. 김씨는 150만원으로 중고승합차를 사서 한 종교단체가 주축이 돼 홀로 사는 노인들과 양로원·고아원에 부식을 대는 일에 동참해 돕기 시작했다. 얼마 후에는 ‘요령’을 익혀 혼자서 시장통 등에서 음식물을 얻어 배달했다.

가슴 아픈 일도 많았다. 자식들한테 버림받고 홀로 사는 독거노인들 중에는 어느 날인가 싸늘한 방안에 주검으로 누워 있는 경우도 여럿 있었다. 때론 너무 여위고 약해져 도저히 홀로 지낼 수 없는 노인들을 양로원에 데려다 주고 돌아오면 “내 부모를 팔아먹은 기분이 들어서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매일 자신을 진심으로 기다리는 사람들을 5000명이나 가진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이나 될까요. 그게 제 보람입니다.”

그러나 올해는 힘든 해였다. 지난 6월부터 오른쪽 눈에 녹내장 망막증이 발병해 실명(失明) 위기에 놓였다. 요즘은 밤에 운전하는 것조차 힘들 정도가 됐다고 한다. 수술을 받아야 하지만 400만원이나 하는 수술비 때문에 엄두를 못 내고 있다. 그런 어려운 여건이지만 김씨는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어디선가 남을 위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이 겨울을 나게 될 힘을 주리라 믿습니다.”

(최현묵기자 seanch@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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