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menu-icon
mobile-menu-icon
close
close

미담 공유

낡음이 가져다 준건.

작성자
이**
작성일
2004-05-17
댓글
0
조회수
808
학교가 파하고 써클 활동을 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횡당보도를 건너고 가로등이 켜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 한참이나 걸어가고

있었을 때 였을까? 뒤에서 삐끄덕 소리를 내며 ... ... ...

낡은 리어카에 자신의 몸집의 몇배나 되는 상자들을 가득 싣고는 힘겹게 끌고

가시는 할아버지를 보았다.

나를 스쳐서 몇 미터 못가 리어카가 감당할수 없을 만큼의 양이 담겨 있어서

그런지 상자들은 하나 둘씩 떨어져만 갔고 할아버지께서는 모르신듯 계속해서

앞으로만 가시고만 계셨다.

"힘든데……. 그냥 지나칠까? 할아버지께서 알아서 하시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몇 발자국 때지 못하고서 어느새 나는 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 상자들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하나를 줍고 하나를 줍고 두개를 집고 두개를 집고 …… 생각보다 많은 양의

상자들은 떨어져 있었고 어느새 나는 조금씩 후회를 하고 있었다.

"아씨, 이아름. 괜히 나섰어." 라는 되새김과 함께.

허나, 그 후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나는 잘했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대략 10개에 가까운 상자들을 짊어지고 할아버지께 갔고 하나씩 옮기고

있었다. 한참이나 그렇게 옮겼을 때 쯔음에 꽤나 고급 승용차가 골목을

들어오고 있었다. 어느새 할아버지와 내가 서 있는 곳까지 와 버렸고,

"차가 못 지나가잖아요, 옆으로 좀 비켜봐요." 라는 말을 욕과 섞으며

할아버지께 벌컥 화를 내버리는 것이었다. 당황했다.

자신보다 훨씬 높은 사람에게 그러는 것도 화가 났지만, 누가 보나 뻔히

할아버지께서는 지금 불편한 상황인데에도 내려서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기다리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옆으로 비켜달라며 욕을 하는게 어이가 없었고

심히 당황스러웠다.

"나이만 많다고 어른인가? 우리보다 까짓 몇년 더 살았다고 어른인가?"

우리들이 어른 공경 못하면 예의없다고 뭐라고 할때는 언제고 자기들은?"

라는 화가 머릿속에서 입안에서 치밀고…….

할아버지께서는 이게 너무나 익숙한듯, 당연한듯 리어카를 옆으로 조금씩

옮기고 계셨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해서 뻘줌히 서 있기만

했었고, 고급승용차의 운전자는 그 후로도 몇번이나 짜증을 내며 비키라는

말을 더 해댔다.

그렇게 할아버지께서는 몇번이나 더 옮기시고 승용차는 빠져 나갔다.

승용차가 빠져나간후 마저 못 싣고 있었던 상자들을 다 옮기고 리어카도 마저

끌려던 참에 할아버지께서는

"아가씨 고마워, 이젠 됐어. 젊은게 어디 버릇없이 욕하고 반말하고……."

라고 자동차가 빠져 나간 골목을 한참이나 보시며 말끝을 흐리셨지만 못내

속상한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렇기도 하셨겠지. 글을 보는 사람이야

아무것도 모른다. 듣는 사람이야 아무것도 모른다. 승용차가 지나가고 그 옆에

있던 낡고 초라한, 작은 리어카의 대조란…….

내가 만약 그 길에 서 있지 않았다면 할아버지께서는 끝내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을 것이다. 나에게 고맙다며 말씀하실 때 눈가에 고여있었던 눈물을

보았다면 충분히 그러시고도 남으셨을것이다.

오랜만에 좋은 일 했다는 생각도 잠시. 늙으신 할아버지께서 내 앞을 앞질러

리어카를 끌고 가시는 모습에 나는 알 수 없는 씁슬함에 눈물을 남기고야

말았다.


첨부파일
비밀번호 입력
본인확인을 위해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비밀번호 입력
본인확인을 위해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