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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담 공유

이 땅 모든 아버지의 모습/

작성자
닭**
작성일
2001-05-06
댓글
0
조회수
517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합니다.
어린이 날이 있고, 어버이날이 있고, 또 스승의 날도 있고...
참 많은 날들이 5월 한 달 동안에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생일을 맞는 분도 계실테고, 각종 기념일을 맞이하는
분들도 계시겠죠.
5월의 신부가 되시는 분도 어쩜 계시겠네요.

여기 참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아버지 한 분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비록 한 쪽 눈이 없는 장애의 몸이지만,
지금 그가 살아가는 모습은 두 눈을 갖고 있을 때는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그런 삶의 모습이라네요.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의 가정에 행복이 깃드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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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눈으로 못 본 삶을 한 쪽으로 봅니다”
4급장애의 어려움 딛고 살아가는 임성묵 씨

서울 시내의 한 보험대리점. 다른 사무실과 평범한 자리 한 켠에 유달리 흑백사진 한 장이 눈에 띈다.‘마음을 다스리는 글’이란 짧은 글과 함께 나란히 놓여진 이 사진 속의 주인공이 바로 이 자리의 주인인 듯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제 사진을 놓아두는 것과는 달리‘복사한 사진’을 넣어둔 것을 보며‘왜?’라는 의구심을 갖게 만들었던 사람. 임성묵 씨(S화재 생활설계사, 55)의 흑백사진첩을 들여다보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젊은 시절에는 대기업의 경리과장으로 일하고 그러다가 나름대로 사장님이란 소리 들어가며 자신의 사업을 하던 사람. 샐러리맨에서 일약 사장님이란 명함을 내밀기까지는 참 평탄하고 쉬운 길을 걸어온 사람이다. 월급봉투 대신 골프채와 고급 승용차를 즐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회전의자에 앉아 아랫사람을 부리며 경영자로서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비명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예전과는 180도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의 모습이 그렇고 삶의 방식이 그러하다. 사업부도로 인해 빚쟁이들에게 쫓기느라 딸 졸업식에 간신히 얼굴만 내밀었고, 남의 집 귀한 딸 데려다가 사모님 소리 몇 번 들어보게 한 것이 그가 아내 안봉순(52) 씨에게 해준 전부란다. 생계를 꾸려가는 것은 전적으로 아내가 식당에서 설거지하는 것으로 벌어오는 돈 몇 푼. 그런 아내의 허리를 펼 여유도 주지 않고 임성묵 씨는 오른쪽 눈과 오른편 얼굴부위에 암세포가 생기는 상악동암이라는 건강이상을 보였다. 치료는 거의 불가능이었다. 자포자기로 그렇게 시간을 보내야 할 때 자신을 수술대 위로 올려보낸 것은 아내와 아이들이었다.
“우리에게 돈이 뭔 소용이고 명예가 뭐 필요해요. 가난해도 좋으니 우리 네 식구 모두 건강하면 그뿐이지. 당신이 그냥 그렇게 우리 곁에 있어만 준다면 더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요. 내가 비록 날품팔이 일을 할지언정,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예요. 그냥 우리 옆에만 있어줘요.”
10시간에 걸친 2차례의 수술 그리고 완치. 그러나 임성묵 씨는 거울을 들여다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뭔가 허전함이 한쪽 볼에서 느껴졌기 때문이다. 암세포를 제거하기 위해 임 씨가 치른 댓가는 오른쪽 얼굴 부위와 눈 부위를 축출해야 했다. 왼쪽은 도톰한 볼이 잡히고 눈으로는 세상 모든 것도 다 볼 수 있지만 오른쪽은 달랐다. 푹 꺼진 볼과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수술로 다 제거되어 함몰된, 붕대로 가려져 있어야 하는 눈. 가족들은 괜찮다고, 그나마 이렇게 살아있으니 다행이라고 위로를 하지만 당사자가 아니고는 느낄 수 없는 슬픔과 좌절은 임 씨를 고통스럽게 했다.
하지만‘어차피 살 거라면 제대로 살아보자’는 오기가 생겼다. 하지만 일자리를 위해 직장을 얻으러 다녀도 남과 다른 외모로 인하여 거부감을 주기 일쑤였고,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누구를 원망할 일도 아니었고 해서도 안 될 일이었다. 그래서 다른 이들의 수기나 체험담 등의 글을 많이 읽었다. 그것은 임 씨에게 큰 힘이 되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신문에 난 보험사 모집 광고를 보고 지금의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인맥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그동안 알고 지낸 이들을 찾았다. 아무리 반갑게 맞아주던 사람도 마지막에 보험 이야기를 꺼내면 얼굴이 굳어지고, 어떤 이는 생활비에 보태라며 몇 푼의 돈을 집어주기 까지 했다. 동정이었다. 다시는 그들을 찾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집으로 돌아와 다 큰 가장이 꺼이꺼이 울기도 하고, 가방도 내팽개치는 등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초라함을 느낄 뿐이었다.
그러나 삶에 대한 의지는 뭇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웃들을 향한 그의 진솔한 말 한 마디는 그 어떤 언변가의 혀보다 강했다. 잠시 잠깐 실적 올리기 위해 내뱉는 말이 아닌, 진정으로 그들을 위한 영업을 했고 욕심의 싹은 애시당초 잘라내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임했다.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청소하는 아주머니들과 이야기하며 그들이, 없는 돈이나마 그들의 미래에 대한 투자를 하는데 도움을 주자, 임 씨의 적극적인 생활자세에 사람들은 격려를 보내왔다. 알음알음으로 입소문이 나 이제 임 씨의 고정고객도 제법 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각지 못했던 일들.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내 가족과 함께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임 씨가 신체의 일부분과 바꾼 댓가로 충분했다.
임 씨에게는 길이 있다. 그 길은 때로 오르막으로 나타나기도 하다가 내리막으로도 다가오고, 또 비포장 울퉁불퉁 시골길로도 다가오고, 구부러져서 저만치 앞이 보이지 않는 길로도 다가온다. 하지만 그는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감사하다. 아니 자신의 앞에 놓여진 길이 있다는 사실이 벅찰 뿐이다. 그 길의 끝에는 행복이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지금은 그 어떤 배부른 투정도 부릴 여유가 없다.
명퇴니 뭐니 해서 가장이 쓰러지고 그 가장이 쓰러지면 그를 믿고 있던 가족들도 쓰러지는 것이 요즘의 현실. 그런 소식을 대할 때면 자신의 지나온 날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는 임 씨. 하지만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잘 살고 있는데 가장이란 이름을 걸머진 분 모두 힘내십시오.”라는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는 그.
좋은 영화는 아무리 봐도 느낌이 새롭다. 그것이 흑백이든 칼라이든. 임성묵 씨의 삶이 그러하다. 자신의 과거를 뒤돌아보며 오늘을 열심히 살고, 내일에 대한 확신을 갖고 사는 그의 모습에서, 책상 위 복사된 사진은 그가 과거에 연연해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뒤돌아보며 내일을 위해 채찍을 가하는 사람임을 알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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