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많이 다니는 전철역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적십자사의 헌혈차량입니다. 하지만 그 앞을 지날 때면 갑자기 사람들의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아직도 헌혈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탓이죠.
자동차매매상을 하는 이승기(47)씨는 요즘 1달에 2번이상 헌혈을 합니다. 피를 뽑는 헌혈은 보통 두 달에 한 번 정도 할 수 있지만 혈액 안에 있는 혈장성분만을 헌혈하는 "혈장성분헌혈"은 수분만 보충해주면 됩니다. 지난 79년부터 헌혈을 시작한 이씨는 이제까지 총 200여회의 헌혈을 했습니다. 1년 평균 15회-20회 정도의 헌혈을 한 셈이죠. 이것을 양으로 따져보면 무려 8만여cc, 성인 17명 정도의 피를 모은 만큼의 어마어마한 양이지요. 60kg 몸무게의 성인 한사람의 혈액은 4천5백cc 정도이고, 그 중 480cc는 필요없는 피여서 몸 안에서 자연히 썩어 없어진다고 합니다. 한 번 헌혈의 양이 400cc라고 하니 기왕이면 한 방울의 피라도 요긴한 이웃에게 나눠주자는 것이 이씨의 생각.
그동안 모은 헌혈증서는 지난 삼풍백화점 사고 때와 백혈병환자 등을 위해 거의 다 전달한 이씨는 더욱 건강한 혈액을 헌혈할 수 있도록 자신의 건강관리도 철저히 지키는 편. 뿐 만 아니라 "사후 장기 기증"을 서약했고, 필요하다면 자신의 신장도 기증할 수 있다고 서슴없이 말합니다.
이처럼 이씨의 열성적인 헌혈봉사를 썩 내키지 않아 하던 부인 일찬영(40)씨도 갑작스런 수술로 수혈을 받아 본 후로는 헌혈의 소중함을 피부로 느끼게 됐지요. 외아들인 승환(고2, 양천고)군은 올해 맞는 생일을 손꼽아 기다렸답니다. 만 16세가 되어야 헌혈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기기 때문이라나요. 승환군은 생일날 친구들과 함께 혈액원에 가서 헌혈을 하면서 흐뭇했습니다. 어른이 되는 성년식에 주고받는 화려한 선물 대신 헌혈문화로 바꾸면 좋겠다는 기특한 바램을 갖고있어요. 또래 친구들에게 헌혈을 추천하는 등 승환군도 아빠와 함께 헌혈 전도사로 유명해졌습니다.
이승기씨는 이제 제 때 헌혈을 하지 않으면 죄 짓는 느낌이 들 정도라고 합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아직까지 인공혈액은 만들어지지 않아, 헌혈의 의미는 더욱 크기에 그의 헌혈정신은 더욱 소중하게 다가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