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 갑니다.가을은 서둘러 작은 짐승에서부터 하잘 것 없는 풀잎에 이르기까지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견디기 위해 부지런히 산과 들녘을 헤매며 충분히 영양을 섭취할 것을 가르칩니다.나무들은 충실히 그 충고를 따라 물관을 막고 마악 잎을 떨군 준비를 서둘러 끝냈습니다.
며칠 전(11월 8일,수) 다섯 부부가 간단한 저녘모임을 가졌습니다.남편의 한 친구분이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 늦게야 자리를 같이 했습니다,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을 수 십번 반복하면서. 식사값을 그 분이 지불했는데 누구보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황급히 지갑을 꺼낼 때 반이 찢어진 고속버스티켓이 팔랑거리며 떨어졌습니다.관급공사를 많이 하는 S건축기술공사에 근무하는 그 분은 그 날 삼척공사현장에 출장 중이었다가 헨드폰으로 약속시간 4시간 전에야 연락이 닿아 참석한 것입니다.
만나기 일주일 전,몇 친구가 언제 칼국수라도 한 그릇하자며 지나가는 말로 약속 아닌 약속을 했답니다.그러다 갑자기 날자가 잡혔고 바쁜 직장생활로 미리 연락이 불가능했던 그 분은 당일에야 겨우 통화가 가능했답니다. ''그래 지방일은 다 끝났냐NULL''는 친구의 물음에 내일 첫차를 타면 업무에 전혀 지장이 없다며 너털웃음을 웃으며 도시의 불빛 속으로 멀어져 갔습니다.가을에 접어든 나이-하잖은(?) 약속을 위해 먼 길을 달려온 그 분의 뒷모습이 가을나무보다 아름다웠습니다.금년 겨울은 어느 해보다 따뜻할 꺼라는 생각이 빗살무늬처럼 가슴에 새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