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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담 공유

고수 할아버지와 초보 할아버지

작성자
한**
작성일
2001-12-28
댓글
0
조회수
763
" 이번역은 잠실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8호선을 이용하실 손님께서는 이번역에서 하차하시기 바랍니다. "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 졸고있던 나는 안내멘트에 깜짝놀라 재빨리 차에서 내렸다. 내려야할 역을 지나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8 호선으로 갈아타기위해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조금은 긴 통로를 따라 걷고 있었다. 잠이 덜깨서인지 신경이 예민해져 있던 그때, 뒷쪽에서 내 신경을 자극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짜증을 약간 섞어(!) 고개를 뒤로 획!!! 돌렸고, 고개를 돌려 본 그곳에는 시각장애를 가지고 계신듯 보이는 할아버지 두분이 앞뒤로 걸어오고 계셨다.
앞에서서 뒤에 따라오는 할아버지를 안내하는 ''고수 할아버지'' 와, 그런 고수 할아버지를 따르는 ''초보 할아버지'' 참... 드물게 보이는 그런 광경이었다. 나는 재촉하던 걸음을 천천히 천천히 늦춘 후 두분 할아버지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고수 할아버지'' 는 이길이 낯설지만은 않은듯 보였으나, ''초보 할아버지''는 처음 와보는 길인듯 계속 지팡이만 더듬거리셨다.
''고수 할아버지''는 통로를 걷는 내내 " 잘 따라오고 있져? ", " 뒤에 오구 있는거져? " 하고 ''초보 할아버지''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를 확인하셨고, 그런 ''고수 할아버지''를 따라 ''초보 할아버지''도 통로를 수월하게 걷고 있었다.
이런 두 분을 보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입가에, 또 내 얼굴에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시각장애우를 보면서 그들의 행동이나 언어 등을 비웃는 그런 웃음이 아닌,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답다는 생각에서 비롯되는 일종의 미소같은 것이었다.
8 호선 열차가 도착하고 ''고수 할아버지''와 ''초보 할아버지'', 그리고 나는 동시에 차에 올라탔다. 할아버지 두분은 자리를 잡고 앉으셨다. 그리고 난 그 옆에 섰다.
앉으시자 마자 ''고수 할아버지''는 ''초보 할아버지''께 이것 저것을 일러주셨다.
" 신촌역이든, 천호역이든 무조건 맨 앞으로 와요. 그럼 갈아타기가 훨씬 수월하다우~ "
" 8 호선에서 5 호선으로 갈아탈라면 8 호선 잠실역에서 2-4 번문 앞으로 가면 바로 앞에서 내릴 수 있어요. "
그 다음역에서 내려야 하는 나는 계속 지켜보고 싶은 아쉬움을 뒤로한채 집으로 돌아왔다.
''초보 할아버지''가 ''고수 할아버지''께 받은 그 고마움을 또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도록 오래도록 건강하셨음 좋겠다. 물론 상대방의 불편함을 최소화 시켜주고, 아낌없는 격려를 해주며 ''초보 할아버지''를 인도하신 ''고수 할아버지'' 또한 건강하셨음 좋겠다.
그분들의 모습을 지켜본 나 또한 지금의 내 환경을 불평하고 불만스럽게만 여기지 않고,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란다.

-2001년 12월 28일 집으로 돌아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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