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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담 공유

경찰서 목욕탕에 사랑의 김 ‘모락’,

작성자
이**
작성일
2000-11-15
댓글
0
조회수
555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 10일 오후 2시. 서울 양천경찰서 앞마당에 들어선 전경버스에선 후줄근한 차림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20여명이 내렸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 전·의경 등의 부축을 받으며 찾은 곳은 지하 1층 ‘사랑의 목욕탕’.


갑자기 뚝 떨어진 기온 탓인지 ‘콜록콜록’ 기침하던 조일준 할아버지(72)는 “오늘같이 몸이 찌뿌드드할 때 뜨끈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니 얼마나 좋아”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양천서에 목욕탕이 생긴 것은 지난해 12월. 밤샘 근무를 밥먹듯 하는 경찰관들이 목욕을 한번 하려 해도 경찰서가 목동아파트 단지 한가운데 있는 통에 한참 나가야 하는 불편 때문이었다.


양천서는 지하의 40평짜리 피복창고를 개조, 조그맣지만 깨끗한 목욕탕을 만들었다. 새벽마다 야근한 직원들로 붐볐지만 근무시간인 낮에는 텅텅 비게 됐다.


직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방안을 찾던 김철주 서장의 머리엔 관내 순찰 중 자주 만나는 할아버지와 노숙자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김서장은 전경버스로 달동네에 혼자 사는 노인이나 노숙자들을 목욕탕에 모셨다. 거동이 어려운 고령자들이 대부분이어서 전·의경들이 때를 미는 등 자원봉사에 나섰다.


경찰서를 죄지은 사람이나 찾는 곳으로 알던 할아버지들은 처음엔 몸을 사렸다. 노숙자들도 “수용소에나 보내는 것은 아닌지…” 하며 꺼림칙함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장소가 비좁아 1회에 25명 정도밖에 이용할 수 없는 이 목욕탕은 이내 할아버지·할머니들의 명소로 자리잡았다. 지금까지 3,000여명의 어려운 이웃들이 사랑의 목욕탕을 찾았다. 이런 소문은 금세 아파트 단지 전체로 번져 인근 아파트의 청소년과 주부들도 도우미를 자청하고 나섰다. 석달째 자원봉사중인 이강산군(강신중 3년)은 “목욕이 끝난 뒤 환하게 웃는 할아버지들 모습을 보면 친할아버지를 뵌 것처럼 즐겁다”고 말했다.


주부 도우미 김의순씨(54·양천구 신정3동)도 “좋은 일이라서 그런지 주부들이 목욕봉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며 “바가지와 비누 등은 어머니회에서 한꺼번에 준비한다”고 밝혔다.


목욕이 끝나면 노인들은 경찰서가 구내식당에 정성스레 마련한 따뜻한 밥은 물론 간식으로 빵과 우유를 먹고 양말 한켤레씩을 선물받는다.


김서장은 “할아버지·할머니를 모시다 보니 직원들에게도 자연스럽게 경로 정신과 주민을 위하는 마음이 생기고 경찰과 주민 사이에 있던 벽도 서서히 없어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노숙자와 독거 노인들의 언 가슴이 사랑의 목욕탕에서 녹고 있다.


〈정유미기자 youm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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