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말까지 ‘콩나물 버스’의 ‘푸시 맨’이던 버스안내양, 산업발전의 뒷전에서 냉대를 받던 공장 여공.
부산지역의 10대 20대 버스안내양과 여공 400여명은 79년 11월 ‘생명의 금고’를 결성했다. 이들은 당시 ‘시한부 생명을 살고 있는 한 대학생’에 관한 신문기사를 보고 “이 대학생은 내 친구의 동생 또는 오빠일 수도 있다”며 따뜻한 사랑을 전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들은 승객이 모두 내린 뒤 종점에서 버스에 버려진 빈 병과 휴지를 모아 팔고 부족한 잠과 싸우며 수공예품을 만들어 바자를 열었다. 자선찻집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 해 12월 100만원의 성금을 당시 서울대병원에 심장판막증으로 입원 중이던 20세의 부산대생 황외석씨(40·현 회사원)에게 전달해 꺼져가던 생명을 건졌다.
이 일을 계기로 빈 병 하나, 올 하나에 정성을 쏟은 결과 매월 은행통장에는 땀과 노력의 대가가 쌓였고 그 통장을 ‘생명의 금고’라고 이름지어 지금까지 선행을 해오면서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이런 따뜻한 사랑의 이야기가 2000년의 해를 넘기며 뒤늦게 알려져 진한 감동을 주고 있다.
시내버스 자율화조치로 버스안내양이 없어지고 노동집약적인 공장이 하나 둘 없어지면서 여공들이 줄어든 85년 이전까지 ‘생명의 금고’는 600여만원의 기금으로 4명의 심장판막증 환자와 9명의 가난한 환자에게 수술비를 지원했다. 금고가 어려움에 처하자 적십자사 부산지사에서 88년 회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기금 5000만원을 내 놓으면서 다시 사랑의 불길이 힘차게 타올랐다.
발족 당시 회원 20여명을 중심으로 현재 200여명의 회원들이 매월 3000원씩의 성금을 모아 운영중인 이 금고는 88년부터 현재까지 183명의 저소득 환자에게 1억5500만원의 수술비 및 진료비를 지원했다. 심장병뿐만 아니라 골수염 신부전증 백내장환자에게까지 수술비를 지원해 왔다.
그동안 한번도 공식 행사를 갖지 않은 이 금고는 14일 오후 ‘꺼져가는 이웃의 생명을 살리자’는 주제로 수혜자와 후원자가 자리를 함께 하는 첫 만남의 행사를 부산진구 부전동 적십자회관에서 갖는다. 이 자리에는 지난해부터 매월 후원금을 보내오고 있는 일본인 안도 마사오미(安東政臣·53)도 참석한다. 금고 탄생에 견인차 역할을 했던 강옥자씨(44·전 국제상사 근무)는 “어려울 때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은 한 생명의 희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