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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담 공유

장애인과 20년… 천노엘 신부 ;

작성자
살**
작성일
2001-01-09
댓글
0
조회수
539
패트릭 노엘 오닐(68)씨.

고희를 2년 앞둔 백발의 노안이지만 여전히 동안이다. 눈을 크게 뜨고 환하게 웃는 모습은 더없이 너그럽고 그지없이 맑다. 그가 바로 「장애인의 수호천사」로 알려진 광주 엠마우스 복지관의 천노엘 신부이다.

그는 현재 광주시 북구 운암2동 엠마우스 복지관 옆 2층 양옥의 「그룹 홈」에서 정신지체 장애인 4명과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살고 있다. “장애인들도 일반인과 똑같이 지역사회에서 살고, 직장에서 능력에 맞게 일하고,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천 신부는 “그룹 홈은 그 같은 권리를 실현시킬 수 있는 적절한 대안”이라고 했다.

장애인들과 함께 살며 그들이 자족, 자활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직접 음식도 만든다. 『된장국과 김치찌개는 기본이지요. 닭죽도 내가 만들면 맛이 있다고들 해요.』 토요일이면 이들과 등산도 하고 노래방도 같이 간다. 그가 즐겨 부르는 노래는 ‘만남’과 ‘하숙생’이다. 그래서 그의 작은 방에는 컴퓨터 외에 노래CD와 요리책이 있다.

취미라고는 매일 오후 1시간씩 복지관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광주문예회관으로 산책을 하고, 위성텔레비전을 통해 럭비게임을 보거나 책을 읽는 것이다.

천노엘 신부는 섬나라인 아일랜드의 리머리크시에서 태어났다. 300여년 이상된 가톨릭 집안이었다. 다섯 살 때 한 선교사가 아프리카 나병환자촌에서 헌신봉사한 내용을 담은 무성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은 그는 다섯 형제자매 중 유일하게 사제의 길을 걷는다.

그는 럭비를 잘하는 성골롬반대 신학교(7년제)에 들어갔다.『신학생 시절 젊은이로서 봉사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곳을 찾았습니다. 한국전쟁 중 선교사 신분으로 북한에 끌려가 수용소생활을 하다 귀국한 신학교 선배로부터 체험담을 듣고 한국 파견을 소망했습니다.』

그가 한국에 도착한 것은 1957년. 첫 임지인 장성을 비롯, 광주·전남지역에서 사목활동을 하면서 주민들의 어려움을 도와주었다. 광주 북동성당에서 주임신부로 활동하던 1975년 가깝게 지내던 한 정신지체 장애인(당시 19세)의 죽음은 그가 「교회 안」에서 「교회 밖 장애인들 세계」로 나선 계기였다.

그해 추운 겨울 급성 폐렴이 발생한 지 하루 만에 갑작스럽게 숨을 거둔 그를 교회묘지에 고이 묻어준 천 신부는 ‘사회를 용서해주렵니까, 교회를 용서해주렵니까. 나는 긴긴 동안 당신을 외면했습니다’라는 묘비를 세웠다. 장애인을 위해 살겠다는 자기 선언이었다. “그때 교회 밖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교회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천 신부는 지금도 명절이면 어김없이 그 묘지를 찾는다.

81년 장애인특수사목으로 지정받은 그는 장애인 복지에 대한 견문을 넓히기 위해 미국·캐나다 등 각지를 6개월간 돌며 현장을 체험했다. “그들은 장애인들을 수용시설이 아니라 지역사회에 끌어들여 함께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돌아온 그는 당시로선 생소한 「그룹 홈」을 실천에 옮겼다. 자원봉사자, 정신지체인 셋이서 보금자리를 꾸몄다. 장애인들이 늘자 마당에 텐트를 치고 작업장을 만들어 카네이션 조화 만들기 등을 가르쳤다. 시간과 요일, 그리고 돈의 개념을 알려주었고, 공중전화이용·버스타기 등도 직접 체험토록 했다.

그는 85년에는 모국의 성골롬반 외방선교회 등의 도움으로 장애인들의 재활터전인 엠마우스복지관을 세웠고, 91년 하남공단 근로시설을 세워 장애인들이 일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했다. 현재 그가 세운 복지시설은 장애인을 주간에 보호하는 곳, 그룹 홈(8개소), 정신지체어린이를 위한 치료센터 등으로 400여명의 장애인들이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지난 97년 제1회 ‘장애인 인권상’을 주려하자 “장애인에 대한 봉사를 이유로 상을 받는다면 우리는 또다시 ‘너와 나’로 나눠지게 된다”며 수상을 사양했다.

그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은 ‘Aging’과 ‘Our Journey Home’. 자연적인 연령 앞에서 어떻게 기쁜 마음으로 두려움 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인지를 사색하는 것이 앞의 책이고, 뒤의 것은 장애인들과 함께 사는 절절한 사연들이 그 내용이다.

『한국 사회는 ‘넘버 원 신드롬’이 너무 심각합니다. ‘나눔의 철학’이 절실해요. 고향 아일랜드는 2년마다 한 번씩 찾아가는데, 3년 전 고향의 수퍼마켓에서 북한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모금함을 본 적이 있어요. 우리 주위의 수퍼마켓에서 이런 것 볼 수 있나요?”

경제적으로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소재로 한 영국작가 찰스 디킨스의 소설 ‘데이비드 카퍼필드’를 얘기하면서,『한국 사회도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살펴야 한다』고 강조한 천노엘 신부는 “저와 함께 손잡고 즐겁게 살 수 있는 장애인들이 여기 있는 한 한국에 살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 광주=권경안기자 gakwon@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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