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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담 공유

달동네 달로뜬‘곽가이버’곽충근씨,1

작성자
이**
작성일
2001-05-28
댓글
0
조회수
833

훤칠한 청년 곽충근씨(29)는 ‘곽가이버’다. 늘 메고 다니는 가방 속에 망치·드라이버·펜치와 전선 한 묶음, 청테이프 몇 개. 언제 어디서든 뚝딱뚝딱 고친다.


서울 관악구 신림7동. ‘난곡’이란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진 곳.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아 서울 최대의 달동네로 불린다. 청년 곽가이버는 여기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동네를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게 일이자 생활이다. 보수를 받지 않으니 일이라기보단 생활한다는 쪽이 가깝다.


오전 9시. 오늘은 어느 집을 돌아볼까. 든든하게 짐을 꾸려 출발. 하도 다녀서 익숙한 길이지만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오늘처럼 햇볕 내리쬐는 날엔 몇 발 가지 않아도 이내 땀방울이 맺힌다.


공동빨랫줄이 걸려 있는 바로 앞, 노끈으로 문이 잠겨 있는 집에 다다른다. 몸이 아픈 50대 아들과 단둘이 사는 김장순 할머니(82)네였다.


“바깥바람 좀 쐬셔야죠. 방에만 앉아 계시면 어떡해요. 방 청소도 한번 하셔야죠”


누가 왔는지 잘 알아보지 못하는 할머니. 고개만 가로 젓는다. 방안 구석에 뭉쳐 있는 옷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내친 김에 가방 내려놓고 팔을 걷어붙였다. 한 사람 앉으면 꽉 차는 ‘마당’의 수도꼭지 앞에서 툭닥툭닥. 단숨에 시원하게 밀린 빨래를 해치운다. 그동안 난곡에서 갈고 닦은 빨래 솜씨가 프로급이 된 것 같다.


“뭐, 필요한 건 없으세요?”. “으응, 그거…”. “아, 베지밀이요?”. 밥을 아예 못 잡수시는 할머니는 오로지 베지밀과 요구르트로만 끼니를 잇는다.


경로당 청소일로 한달에 3만원을 버는 김상례 할머니(74) 집에 가선 곽가이버의 진면목을 보였다. 아무리 넣어둬도 차가워지지 않는 냉장고. 하도 오래된 물건이라 명을 다한 것 같기도 하지만 곽가이버에게 ‘포기’란 있을 수 없다. 냉장고 문을 열고 세월의 더께마냥 굳게 쌓인 성에를 긁어내고 떼어냈다. 이젠 냉기가 돌까. 안되면 짊어지고 내려가 수리센터에 맡겨야 할까. 아냐, 어디서 중고 냉장고 하나 얻어와도 이보단 나을 거야….


벌써 점심나절. ‘사랑의 밥집’에 들른다. 결식 어린이 무료 급식소다. 곽가이버가 1,000원을 내고 점심을 해결하는 단골식당이기도 하다. 며칠째 껌뻑거리기만 하는 밥집 형광등 한번 뜯어보고나서 도시락 뚜껑을 연다. “똑부러지게 하는 것도 없으면서 왜 자꾸 돌아다녀. 하기야 아쉬운 대로 쓸만 하긴 하지”. 밥집에서 일하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곽가이버를 놀린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나눠줄 도시락과 빵·우유가 담긴 봉지 4개를 그의 양손에 들렸다.


오후 2시부터 수업을 시작하는 낙골공부방으로 올라가는 길. 신명헌 할머니(91)네 집이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다. “아이고, 바쁜데 뭐하러 오셨수”하면서도 내심 청년을 기다렸던 할머니. 얼른 고지서 하나를 꺼낸다. “이게 뭔데 날아왔어. 나 주민세는 냈는데…. 이런 게 자꾸 오면 심장이 떨려서 말이야”. “아, 5월초에 내셨다고요. 원래 4월말까지인데 좀 늦게 내시는 바람에 한번 더 보낸 모양이에요. 걱정 안하셔도 돼요”. 이 댁에선 뭘 고치지 않았어도 충분히 ‘해결사’ 노릇을 했다. “마음으로 돕는 게 중요하지. 그럼, 마음이 젤이지”. 할머니가 그를 보며 자꾸만 되뇌었다.


오후부터 저녁까지는 공부방의 선생님으로 일한다. 정신없이 떠들다가 토닥토닥 쌈박질도 잘 하는 아이들 앞에선 ‘귀염둥이 청년’이 아니라 ‘엄한 선생님’으로 변신한다.


그는 서울대 철학과 1학년때인 1993년부터 난곡에 발을 디뎠다. 난곡지역 빈민운동 단체의 활동에 가담한 것. 사회운동 단체군복무 기간을 제외하고는 꼬박 ‘출퇴근’을 했다. 처음엔 공부방 자원교사였다가 나중엔 실직가장들의 일자리를 알선하는 ‘일터나눔 활동’ 분야에서 실직가정 집수리 돕기를 맡았다. 곽가이버의 ‘기술’은 대부분 그때 인부 아저씨들의 어깨 너머로 배운 것이다. 현재 생활형편이 어려운 동네 할머니들 가정을 방문해 돌봐드리는 일은 ‘나눔 가정’ 활동이라 부른다.


한 동네에 살진 않지만 자연스레 동네 청년이 된 곽가이버. 남들은 ‘지역 활동가’라 부르기도 하지만 청년 또래가 거의 없는 이 동네의 허드렛일꾼이 됐다. ‘힘’이나 ‘기술’이 필요한 일이 있다 하면 무조건 호출이다. 자잘한 살림살이 수리는 물론이고 주민잔치때 무대도 설치하고 단체로 들어온 컴퓨터를 집집마다 설치해주기도 한다.


“못 하나 박거나 끊긴 전선을 잇기만 하면 금세 해결되는 일인데 문짝 덜렁거리고 불이 안들어와도 그냥 지내시는 분들이 많잖아요. 전 그저 이웃어른들이 못하고 지나치시는 일을 해드리는 것 뿐이에요”


‘내가 오늘 하는 일이 내일 어떤 결과를 맺을지라도 나는 내가 오늘 하고 싶고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겠다’. 멀리 내다보기만 하면서 오늘 당장 해야 할 일을 못해선 안된다는 게 그의 생활신조라고 했다.


/차준철기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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