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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담 공유

''차한잔''에 비워내는 '' 외로움 한말''px,auto,au

작성자
별**
작성일
2001-06-05
댓글
0
조회수
1169
-할아버지들의 ‘수호천사’미도다방 정여사-


노인들에게 외로움은 신경통이나 관절염보다 견디기 힘든 고통이다. 파스나 패치, 진통제로도 해결할 수 없는 골병이지만 아들 딸 며느리들은 알지 못하는 서러운 세월병이기도 하다. 대구 ‘진골목’의 ‘미도다방’은 사막같은 도시 삶에 지친 할아버지들의 외로움과 설움을 달래주고 씻어주며 ‘처방’을 제공하는 ‘약국’이자 사랑방이다. 이 때문에 대구지역 할아버지들 사이에서는 미도다방을 모르면 ‘촌영감’ 취급을 당한다. 할아버지들은 약속장소로서뿐만 아니라 친구나 말벗이 그리우면 미도다방을 찾는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답답한 세상살이며 지난날들의 추억을 이야기한다. 처음보는 사람들끼리도 ‘허교’(許交)를 하고 이내 친구가 된다. 며칠새 모습을 보이지 않다 전해지는 친구들의 부고(訃告)에 가슴아파하기도 한다.


미도다방이 할아버지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된 것은 순전히 이 다방 주인 정인숙(鄭仁淑·50)씨 때문. 60대부터 80대 할아버지들까지 한결같이 ‘정여사’로 부르는 그녀는 할아버지들의 모든 것을 챙겨주는 해결사다. 부탁하는 것은 모두 들어주고 잔심부름까지도 해준다. 딸이나 며느리보다 더 스스럼없이 할아버지들을 대한다. 때론 ‘늙은 오빠’들의 연인이자 수호천사가 돼주기도 한다. 하루 400~500명에 달하는 단골 할아버지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준다.


그녀가 할아버지 ‘전용’ 다방을 시작한 것은 1982년. 고등학교를 나와 직장생활을 하다 이 일에 뛰어들었다.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는 바람에 3남4녀의 장녀로 동생들 뒷바라지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중앙파출소 옆 화방골목에서 개업했다. 허허로운 눈빛의 할아버지 손님들에게 연민의 정이 갔다.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다른 다방보다 차값을 반값으로 싸게 받았다. 단골들이 늘어나면서 할아버지 전용다방이 됐다. 93년에 현재의 약전골목 부근으로 자리를 옮겼다.


미도다방의 커피값은 1,500원, 약차는 2,000원. 여기에 들깨차를 무료로 제공한다. 차값보다 부수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가 더 많은 편이다.


올해로 할아버지 손님을 맞은 지 20년째. 그동안 숱한 사연들도 많았다. 한번은 다방에 이상한 냄새가 났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한 할아버지의 표정이 이상했다. 그만 자신도 모르게 ‘실례’를 한 것이다. 정여사는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할아버지를 목욕하게 해드리고 또 속옷까지 사다 드렸다.


이뿐만이 아니다. 비가 오면 우산이 없는 노인들은 다짜고짜 우산을 내놓으라고 막무가내다. 그때마다 정여사는 우산을 사다 드린다. 그런 요구가 오히려 행복하게 느껴지고 뿌듯하다. 옷이 남루해보이면 시장에 가 옷을 사다 드리기도 한다. 손수건이 없는 할아버지들을 위해 항상 손수건 수백장을 비치해둔다. 담배 역시 돈을 받지 않는다. 며느리들에게 어렵사리 용돈을 타쓰는 노인들의 주머니 사정을 뻔히 아는데 어떻게 돈을 받겠느냐고 했다. 아침밥을 거른 채 ‘출근’하는 할아버지들에게는 전복죽을 끓여드리기도 한다. 차값이 적거나 없는 노인들에게는 주는대로 받거나 아예 받지 않는다.


“어떤 분에게만 잘해주면 금방 투정을 부려요. 나이가 들면 어린아이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이래저래 서운한 게 많은가 봐요. 저도 나이가 드니까 그런 기분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미도다방의 인기 비결은 할아버지 손님들을 이해하면서 ‘한결같이’ 모시는 것. 가족들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할아버지들의 말년 외로움을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안다. 돈을 벌겠다는 상술로는 이룰 수 없는 비결이다.


때문에 정여사는 다방 내에서 할아버지를 접대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길흉사에는 늘 정여사의 발길이 닿는다. 단골손님이 병원에 입원하면 꼭 병문안을 가고 또 부음을 접하면 직접 문상을 간다. 유족이 별로 없는 쓸쓸한 상가에 주로 찾아간다. 이렇게 해서 지출되는 경조사비가 매달 1백만원 정도 된다고 한다.


연중 절기마다 찾아오는 세시풍속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는다. 지난 어버이날에는 떡과 술, 과자 등으로 조촐하게 잔치를 벌였고 수첩도 2,000개 만들어 나누어 드렸다. 보름날에 귀밝이술, 복날에는 시원한 수박을, 동짓날이 오면 팥죽을 쑤어드린다. 지난해 어버이날에는 돼지 한마리를 잡기도 했다.


그침이 없는 정성에 감동한 많은 단골들은 다방곳곳에 정여사와 미도다방을 소재로 숱한 헌시(獻詩)를 남겼다. 지난해 작고한 단골 전상열(全尙烈) 시인은 타계 직전 지역신문을 통해 시 ‘미도다방’을 바쳤다.


“종로二가 미도다방에 가면/ 鄭仁淑여사가 햇살을 쓸어모은다…/ 햇살은 햇살끼리 모여앉아/ 도란도란 무슨 얘기를 나눈다/ 꽃시절 나비 이야기도 하고/ 장마철에 꺾인 상처 이야기도 하고/ 익어가는 가을 열매 이야기도 하고/ 가버린 시간은 돌아오지 않아도/ 추억은 가슴에 훈장을 달아준다/ 종로二가 진골목 미도다방에 가면/ 가슴에 훈장을 단 노인들이/ 저마다 보따리를 풀어놓고/ 차 한잔 값의 추억을 판다/ 가끔 정여사도 끼여들지만/ 그들은 그들끼리 주고받으면서/ 한 시대의 시간벌이를 하고 있다”


정여사의 꿈은 노인들이 한 빌딩 안에서 차를 마시고 바둑을 두고 식사도 할 수 있는 복합공간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보증을 잘못서는 바람에 빚을 져 현재는 꿈을 접은 상태다. 하지만 다방만은 꼬부랑 할멈이 돼 힘이 부치기 전까지는 계속 할아버지 손님을 맞을 거란다.



-[취재수첩]‘진골목 큰나무’미도다방…인근지역 실버타운 변모-


1993년 미도다방이 이사오면서 이 일대 다방업계에서는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미도다방이 커피값을 다른 곳의 거의 절반 가격으로 정하자 다른 업소들은 “당신만 살겠다는 거냐”며 항의했다.


그러나 이내 업주들의 ‘시위’는 잠잠해졌다. 미도다방의 1일 손님이 IMF 전까지만 해도 1,000여명에 달했기 때문. 미도다방이 자리가 다 차면 인근 다방으로 갔고 다른 다방도 장사가 잘 됐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 업소는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미도다방의 차값 수준으로 인하하지 않을 수 없었고 덩달아 ‘노인다방’으로 바뀌었다.


이때부터 미도다방이 위치한 약전골목 인근의 ‘진골목’(긴 골목이라는 경상도 사투리에서 유래) 일대가 ‘실버거리’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미도다방을 찾는 노인들이 늘어나자 음식점·기원들이 하나 둘 늘어났다. 현재는 30여곳이 성업중이다. 이처럼 실버타운은 정사장의 미도다방으로부터 비롯됐다.


진골목의 행정구역은 대구 중구 종로2가. 이곳은 큰길을 사이에 두고 젊은이들의 거리인 동성로와 마주하고 있어 신·구의 거리 풍경 또한 묘한 대조를 이룬다. 일제시대에는 대구의 부촌으로 이름높았다. 미도다방 자리도 일제시대 영남 갑부였던 서씨집안의 사랑채가 있던 곳. 지금은 진골목 인근에 국내 대표적인 유림단체인 ‘담수회’ 본부가 있어 그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 미도다방은 담수회를 찾는 유림들이 많이 드나들어 ‘양반다방’이라는 별칭도 얻고 있다.


미도다방이 노인들로부터 인기를 끌자 이 지역 유력인사뿐만 아니라 대구를 찾는 정치인들도 단골로 찾는 ‘명소’가 되고 있다. 정사장은 좌석 한곳을 가리키며 저곳이 ‘전두환 전대통령 좌석’이라고 소개했다. 전 전대통령은 퇴임 후 이곳을 두세번 찾았는데 이때마다 이 자리에 앉아 할아버지 손님들과 격의없이 담소를 나누었다는 것. 박준규 전 국회의장, 김종필 전 총리 등도 대구를 방문할 때 가끔씩 미도다방을 찾는다고 한다.


연중무휴로 오전 8시30분에 문을 열어 오후 11시쯤에야 불을 끄는 미도다방. 마치 70년대 시골다방을 연상케 하는 평범한 공간이지만 이곳에서 노인들은 지나온 삶의 애환과 정담을 나눈다.


/대구/최효찬기자 romacho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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