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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담 공유

새싹들의 음자리 조율 ''호랑이 선생님''px,auto,au

작성자
별**
작성일
2001-06-15
댓글
0
조회수
1305
-전국 관악경연 16년 금상…전북 부안초등학교 지도 최홍렬-


전북 부안초등학교 관악대 ‘코치 선생님’ 최홍렬씨(49)의 진짜 하루는 오후 2시부터 시작된다. 오전에는 전출·입이나 급식관련 업무 등 처리해야 할 일들로 바쁘기도 하지만 수업을 마친 4학년 관악대원들이 이 시간이 돼야 하나 둘 연습실로 모여들기 때문이다. 최씨는 이날도 먼저 온 녀석들에게 8월 제주 국제관악제 참가곡 ‘농촌의 아침’을 연습하도록 해놓고는 5, 6학년 선배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4학년 막내들도 5~6개월만에 벌써 악보 읽는 법을 꽤 깨우쳤다. 초보자용 악보인 서드 악보는 거의 소화해낼 정도다. 특히 타악기를 연주하는 세웅이의 실력은 날이 다르게 향상되는 것 같다. 큰북을 치며 합주할 때는 혼자서 흥겨워 몸을 흔들기도 한다. 각자 연습시켜 놓았을 때는 시끄러운 소리만 내는 녀석들. 그러나 합주를 시작하면 금방 그럴 듯한 화음을 만들어내는 아이들이 최씨 눈에는 신기하기까지 하다.


‘지휘자’가 아니라 아이들의 긴장을 풀어주는 ‘박자 기계’일 따름이라는 최씨. 그가 부안초등학교에서 관악대를 지도한 지도 벌써 18년째다. 전국관악경연대회에서 16년을 내리 금상을 수상한 이 학교 관악대의 화려한 경력을 가꿔온 주인공이 바로 최씨다. 최씨는 정식으로 음악을 전공한 교사가 아니라 한때는 학부모들에게 ‘소사’ 정도로 통하던 기능직 9급 공무원이다. 1984년 관악대를 처음 맡았을 때는 그나마 공무원도 아닌 월급강사 신분이었다.


#젊은 날


최씨가 음악과 인연을 맺은 것은 이리상고 시절. 관악대에 들면 학비를 면제해준다기에 별다른 생각없이 그냥 가입했다. 트럼펫을 맡아 꽤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으나 그때는 음악이 좋은지 몰랐다. 그것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할지도 몰랐다.


72년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대학에 진학할 형편이 못됐다. 그렇다고 동료들처럼 은행이나 기타 금융권에 턱하니 입사할 실력도 아니었다고 한다. 도망가듯 군대에 입대했고 거기에서도 관악대 경력은 그를 따라다녔다. “소대장이 어떻게 알았는지 관악대 경력을 알고는 나팔수 선발대회에 저를 추천한 겁니다. 아무래도 관악대를 했으니 그중에서는 나을 수밖에 없었겠죠. 첫 휴가를 갔다왔더니 보직이 통신병에서 군악대로 바뀌어 있더군요”


최씨에게 제대 후의 몇년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절이다. 친구의 매형이 서울에서 아크릴 조명을 개발하고 있다고 해서 무작정 서울로 올라갔다. 하지만 조그마한 구멍가게 수준의 기업으로, 당시만 해도 첨단사업이던 아크릴 조명을 개발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몇년을 매달렸지만 사업은 실패했고 양말공장 등등을 전전하다 결국 귀향했다.


#무서운 선생님


초등학교 관악대 ‘코치 선생님’ 역할은 부안초등학교가 처음이 아니다. 고향으로 내려온 최씨는 고등학교를 다닌 이리의 한 초등학교에서 관악대 코치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 학교 관악대는 해체됐다. 두번째로 일자리를 구한 곳이 바로 평생직장이 돼버린 부안초등학교. 역시 월급 18만원의 관악대 코치.


최씨는 아직도 처음으로 관악대원들을 데리고 전국대회에 출전했던 84년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 전 해에 전국대회에서 금상을 탔던 터라 아이들의 기대가 컸던 모양입니다. 결과가 ‘은상’이라고 나오자 아이들이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는 겁니다. 자존심도 상하고 가슴도 아프고…. 그 순간은 정말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때부터 최씨는 무서운 선생님이 됐다. 얼마나 무서운지 신나게 떠들던 녀석들도 “관악대”라고 부르는 최씨의 묵직한 한마디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조용해진다. 특히 엄하게 가르치는 대상은 연습시간에 게으름을 피우는 녀석들이다. 눈물이 쏙 빠지게 혼쭐을 낸단다.


“음감이 떨어지거나 연주 실력이 모자라는 학생들은 문제가 아닙니다. 반복적으로 연습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원하는 소리가 나오게 되니까요”


#가르치는 보람


“이 애들만 제대로 가르쳐서 졸업시켜야지 하면 또 다른 애들이 들어오고 이놈들만 마쳐줘야지 하면 또 신입생이 들어오는 바람에 지금까지 오게 됐습니다”


최씨가 그렇게 아이들을 만나고 보낸 지도 어느새 20년이 다 돼 간다. 어엿한 사회인이 된 제자부터 대학에 붙었다고 인사하러 오는 녀석, 광주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니다 방학이라고 찾아오는 애들까지. 보다 안정적이고 어엿한 직업을 찾아 방황하던 최씨를 지금껏 이 학교에 붙잡아놓은 것은 바로 이 아이들이었다.


-[취재수첩]선후배‘가르치며 배우며’애정…지역 명물 행사 단골 초청손님-


“저희 관악대는 선생님이 따로 없어요. 선배가 후배를 가르쳐요”


부안초등학교가 1985년 10회 대회부터 지난해 25회까지 16년 연속 전국관악경연대회 금상을 수상한 비결을 여학생 단장인 6학년 김가의양은 이렇게 설명했다. 이 학교 관악대에서는 코치 선생님 최씨가 79명의 아이들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조정자 역할을 하고, 6학년 선배들은 4·5학년 후배들을 직접 가르친다. 그래서 5학년들은 겨울방학 때만 되면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연습에 앞장선다. 그야말로 가르치며 배우게 되는 것이다.


꾸준한 연습도 빼놓을 수 없는 비결. 매일 오후 5시30분까지, 대회를 앞두고는 7시까지도 연습을 한다. 관악대원들은 늘 다른 애들이 학원에 다닐 시간에 연습을 하고, 그 친구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쯤 학원으로 향한다. 귀가시간은 밤 8~9시.


“어른들이 군대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처럼 졸업생들도 워낙 힘들었던 추억 때문에 못잊고 찾아오는 것 같다”는 최씨의 말처럼 졸업한 선배들의 애정도 남다르다. 지난 82년 만들어져 20년 역사를 자랑하는 관악대는 매년 여름마다 3~4일 합숙훈련을 실시한다. 이 합숙에는 선배들도 참가해 매코이의 ‘아프리칸 심포니’를 함께 연주한다. 어느 해부터인가 합숙훈련의 고정 레퍼토리가 돼버린, 힘이 느껴지는 웅장한 곡이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부안초등학교 관악대는 지역의 명물이 됐다. 29명의 관악대원들이 전북도 어린이 관현악단의 멤버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방자치단체나 각종 단체가 주관하는 음악회에 초청받아 연주 실력을 자랑한다. 8월에 열리는 제주 국제관악제에 초청받은 상태이며 내년 7월 중국 광쩌우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지역 관악경연대회에도 참가요청을 받아놓았다.


/부안/박영환기자 yh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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