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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담 공유

작지만 아름다운 시상식

작성자
별**
작성일
2001-06-19
댓글
0
조회수
1116
지난 16일 지구 한 모퉁이에서 가장 아름답고 조촐한 시상
식이 거행됐다.환경단체인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에서
베푸는 풀꽃상의 일곱번째 수상자로 지렁이가 선정된 것이
다.

“자연에 대한 존경심을 회복하기 위해 그 실천으로서”
제정된 풀꽃상은,사람이 아닌 자연물에게 상을 수여하는 아
주 특별한 상이다.첫번째 수상자로 동강 비오리가 선정된
이래 보길도의 갯돌,가을 억새,인사동 골목길,새만금 갯벌
의 백합조개,지리산의 물봉선이 수상자로 뽑혔다.풀꽃세상
의 마음을 오롯이 전해주는 아름다운 수상자들은 사용가치
보다 존재가치에 뜻을 두는데 이 상을 통해 우리의 의미있
는 삶밭 안에 들어왔다.

이 상은,본상에 저 아름다운 이름들을 두고 부상에 저 벗
들을 지키기 위해 애쓴 사람들을 선정함으로써,사람과 자연
이 서로 위하는 한 어울림의 모양을 그려내려고 애쓴다.자
연과 사람의 관계를 뒤돌아보게 만드는 점에서 작지만 힘센
상인 셈이다.

예컨대 다섯번째 수상자인 새만금 백합조개들의 부상 수상
자는 갯벌을 위해 소송을 건 어린이들이었다.바로 이러한
선정 방식과 그 수상자의 면면은,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이 작은 것들끼리의 힘찬 손잡기로써 보이지 않게 튼튼한
그물을 짜두고 있는 것이라는 슬픈 안도감을 준다.

저 약하고 작은 존재들과 서로의 목숨을 나누며 더불어 오
래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은 가난한 마음이다.그러나 그 가
난함은,당장 눈앞의 호화로운 개발과 성장의 헛된 약속을
부끄럽게 만들어 그 자리에 풀꽃들이 숨쉬기 좋은 세상을
탄생시키는 기름진 가난이다.

그러고 보니 풀꽃상의 마음은 바로 지렁이의 이땅에서의
헌신과 정말 많이 닮아 있다.과연 이번 지렁이가 선정된 이
유를 풀꽃세상은 이렇게 밝히고 있다.“2억만년 전에 이 행
성에 출현해 생태계 먹이사슬의 최하위 지위를 굳건히 지키
면서 땅밑 어둠속에서 흙을 부드럽고 기름지게 만들다가 여
러 다양한 포식자들을 만족시키거나 식물의 자양분으로 살
신성인하는 장엄한 최후에 대한 참을 수 없는 감동과 함께
인간의 불충분한 이해에 바탕한 근거없는 혐오증과 모욕에
하염없이 시달리면서도 아랑곳하지 않다가 마침내 인간의
야만적인 생태계 파괴에 의해 서서히 우리 곁에서 사라져가
는데 대한 진심어린 사과와 뒤늦은 애정의 마음으로.”

지렁이는 산성화되어 식물들이 살 수 없게 된 죽은 흙을
제 몸을 통해 살려내어 기름지게 해준다.지렁이는 돌같이
굳어버린 땅을 그 어떤 기계로 뒤집어도 그보다 더 부드러
울 수 없이 갈아 나무와 풀의 뿌리에 공기와 물이 가 닿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움직이는 물길이기도 하다.지렁이
는 정말로 땅을 사랑하던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보이지
않는 벗이었다.

하늘의 용이 높은 자들의 상징이라면,지렁이는 낮고 미천
한 자의 상징으로서 몸을 일으켜 영웅의 아버지가 되는 민
중적 영웅담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그런데,이런 지렁이에게 수상축하를 드리는 마음 한 구석
이 무어라 말할 수 없이 미안하다.

이번 수상자인 지렁이에게는,부상의 수상자가 없다고 한다
.지렁이에 대해서는 그 유익함에 주목하여 어떻게 하면 잘
이용할까를 연구하는 단체는 있어도 지렁이를 지구상의 일
족으로 보호해주려는 어떤 사람들도 찾기 어려웠다는 것이
부상 수상자가 없는 이유다.이 때문에 풀꽃세상 사람들은
농담반 진담반으로,과연 지렁이에게 상을 주는 것이 지렁이
를 위하는 일일까라는 걱정을 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세상 사람들이 지렁이가 상을 받으면 상받은 지렁이가
양기에 좋다고 잡아 먹을는지 모릅니다.”(아이디 예띠풀)
유익할뿐 전혀 해롭지 않은, “밟아도 꿈틀”만 하는 미물
에 대한 대접은 정말 고작 이 정도일지도 모른다.우리는 비
명을 지르지 않는 존재들에 대해 얼마나 무심하고 얼마나
제멋대로인가.급기야 지렁이들이 아주 우리 곁을 떠나버리
고 나면 그 시멘트 같이 굳어진 땅을 어떤 호미로 쪼고 앉
을까.이번 풀꽃상은,정말로 그래서 의미심장하고 아름다우
며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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