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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담 공유

''사랑하는 딸에게'' 아버지의 편지,1

작성자
별**
작성일
2001-07-16
댓글
0
조회수
1254

“엊그제같이 너를 낳아 금자동아 은자동아. 칭얼대는 자장가에 천사같이 잠이 들고, 금지옥엽(金枝玉葉) 등에 업고 나며들며 크는 재롱, 카메라에 담아가며 길러왔던 추억들이 부정(父情)을 깊게 하는구나. 세월이 가니 어버이는 노쇠하고, 자녀는 나이드네. 여식(女息)으로 받은 몸. 몸가짐은 정결히 하고 심상(心像)은 봄날같이 부드럽게 가질 것이며, 생각은 가을같이 밝게 할 것이며, 결단은 서릿발같이 분명하기를”


스물네살 생일을 맞은 딸에게 아버지가 보냈다는 편지. 이미 마흔줄에 들어선 익명의 여인은 아버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이렇게라도 보여드리고 싶다며 20년간 장롱 속에 소중히 간직해온 낡은 편지를 대구시 여성단체협의회로 보내왔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딸의 눈물로 얼룩진 이 편지 말고도 대구시 여협이 지난 5월부터 실시한 ‘아버지가 딸에게 쓰는 사랑의 편지’ 공모에는 수백통의 사연이 날아들었다. 햇살처럼 맑고 건강한 딸을 얻은 순간의 기쁨, 먹을 것 입을 것 풍족하게 마련해주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을 비롯해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딸에게 주는 지혜와 충고, 시집간 딸에 대한 그리움과 염려에 이르기까지 이 시대 아버지들의 딸에 대한 사랑이 행간에 짙게 배어 있었다.


#하늘이 준 최고의 선물, 내 딸


쌍둥이 아빠 허명진씨의 편지에는 갓 태어난 딸아이를 응급실로 보내놓고 안타까워하던 그날의 풍경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혼자 오기 심심해서 또 한 녀석을 앞세우고 세상에 나온 딸아, 네가 태어나던 날 아빠는 목욕을 하고 옷장에서 제일 깨끗한 옷을 입고서 널 만나러 갔었지. 1분이 10년 같은 시간이 흐르고 네가 세상에 태어났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건강한 네 오빠는 우렁차게 울어댔지만 너는 세상에 태어나 한번 울어보지도 못하고 신생아 응급실로 옮겨졌단다. 1.9㎏짜리 미숙아를 병원에 두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엄마는 내내 울기만 했지. 온몸이 마비될 확률이 50%라는 말을 듣고도 목으로 밥이 넘어가는 내가 너무 미웠다. 하지만 기적은 있었단다. 네가 태어난 지 한달쯤 되던 날 분홍빛 포대기에 싸인 채 ‘못생긴’ 얼굴을 하고 내게 오던 날을 아빠는 잊을 수가 없단다”


아버지에겐 세월따라 한뼘씩 커가는 딸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는 즐거움도 비할 데 없다. 앞니가 빠져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달고다니는 딸 현진이에게 김명구씨가 보낸 편지에는 성적순으로 줄세우기만을 추구하는 이 나라의 교육풍토에서 자라게 될 자식에 대한 염려도 함께 묻어난다.


“앞니 빠진 현진아, 코끝에 송글송글 땀방울을 매달고 잠이 들었구나. 오늘 얼마나 신나게 햇살 아래 뛰어놀았기에 이리도 달게 자느냐. 학교수업만 끝나면 친구들과 이야기꽃 한번 피우지 못하고 너나없이 뿔뿔이 학원으로 달려가버리는 요즘. 아직 초등학교 1학년인 우리 딸은 햇살과 친구하고, 놀이터의 모래알이랑 친구해서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하게 자라거라”


장애인 아버지에게 건강한 모습으로 태어난 딸은 하늘이 내린 최고의 선물이다. 근육병을 앓고 있는 안병욱씨가 7살 막둥이딸에게 보낸 편지는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꽃잎의 활짝 웃는 미소보다, 맑은 냇물 흘러가는 소리보다 더 아름다운 그 곳에서 온 내딸 음이. 이렇게 불편한 육체를 가진 사람이 고운 음이의 아빠가 된 것이 너무도 감사하고 행복하다. 1997년이었던가. 두 팔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내게 천진스레 달려오는 너를 힘차게 안아주지 못했던 그날, 네 어여쁜 얼굴에 상처가 났었지. 수십바늘을 꿰매느라 아프고 아팠을 텐데 못난 아빠를 보고 너는 웃고 또 웃었단다. 근육이 늘어져버린 아빠의 손가락 사이로 꽃잎같은 네 손가락을 살짝 끼워주었을 때 아빠는 눈물이 날 만큼 고마웠다. 아빠의 소원은 어서 건강해져서 우리 음이의 예쁜 두 손을 꼭 한번 잡아주는 거란다”


#아버지, 힘내세요!


아무리 자상하다 한들 엄마의 품보다 따뜻하랴. 하지만 성적과 진로, 인간관계로 고민하는 딸에게 아빠는 더 없이 좋은 상담사가 되어준다. 정신교씨는 대학 진학을 앞둔 딸에게 ‘믿음’이라는 선물을 보냈다.


“이 해가 지나면 네가 대학을 가고 성인이 되는구나. 환경운동에 관심이 많고, 동물과 만화 그리기를 좋아하는 내 딸. 한마리 나비를 쫓아 열대우림을 헤집고 다니든, 한척 보트에 몸을 싣고 망망대해를 가로지르든, 아니면 후줄근한 옷차림의 장바구니를 들고 징징거리는 녀석을 재촉하며 쫓기듯 횡단보도를 건너든, 그 어떤 선택을 하든지 그 순간을 즐길 줄 알아라. 또한 선택에 대한 의무와 책임만이 그 선택을 더욱 빛나고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라. 아직은 뒤뚱거리는 날갯짓을 하지만 곧 힘찬 비상으로 대양을 가로지를 수 있으리라 아빠는 믿는다”


뚱뚱해서 고민하는 딸에게 보내는 아빠의 글도 재미있다.


“예진아, 이 세상은 일등하는 사람들만을 위해 준비된 것이 아니란다. 잘생기고 늘씬하고 말 잘하고 돈 많은 사람들을 위한 곳도 물론 아니다. 이 세상이 귀하게 여기고 환영하는 사람은 너와 같이 계산없이 사람을 대하고 순수하게 정을 나누는 사람이란다. 얼굴 퉁퉁한 내 딸, 허리 굵은 내 딸, 벌써 어른처럼 훌쩍 커버린 내 딸아. 이제는 성적이나 몸매 때문에 걱정하지 말아라. 정녕 ‘아부’ 없이 말하건대 아빠에겐 지금 네 모습 그대로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단다”


아버지만 딸에게 용기를 북돋워주는 건 아니다. 언제나 철부지일 것만 같은 자식도 때때로 아빠의 삶에 커다란 활력소가 된다.


“초등학교 5학년 별이의 운동회에 참가하려고 옷을 입고 있을 때였지. 너는 대뜸 ‘아빠, 학교에 오지마. 아빠가 오면 직장도 없이 집에서 노는 사람인 줄 안단 말야’ 하고 소리를 쳤단다. 어찌나 서운하던지…. 그러던 내 딸이 벌써 고1. 어제는 네가 보낸 문자메시지에 다시 한번 눈물을 글썽였다. ‘아빠, 힘내세요! 별이가 있잖아요. 저에겐 아빠가 세상에서 최고인 거 아시죠?’”(김달호씨)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는…


그렇게 애지중지 키운 딸을 낯선 청년의 손에 넘겨줄 때 아버지는 가슴으로 운다. 정동국씨는 결혼을 앞둔 딸에게 이렇게 편지를 띄웠다.


“누가 말했던가. 바다에 나가려면 한번 기도하고, 전쟁에 나갈 때는 두번 기도하고, 결혼에 임해서는 세번 기도하라고. 모름지기 결혼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가를 말한 것일 게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자신을 나눠주려는 노력을 할 때 진정한 사랑이 이뤄진다고 나는 믿는다. 당당하고 의젓하게 생활하되 서로를 아끼고 지혜롭게 살아가거라”


결혼해 자식을 낳고 번듯한 일가를 이룬 딸도 부모에게는 그저 어린아이일 뿐이다. 송준덕씨가 불혹(不惑)의 딸에게 보낸 편지에는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아버지의 사랑과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어젯밤 농장에서 돌아와 아침밥을 먹고 서재에 앉으니 딸의 모습이 떠오른다. 출가하면서 내 책상서랍에 흩뜨려 놓은 채 두고 간 학창시절의 사진들을 훗날 찾을 때가 있으리라 헤아려 표지에 비단천을 입히고 질좋은 한지에 사진을 붙인 뒤 ‘아버지가 엮은 딸의 사진첩’이라고 적어본다. 사랑하는 딸아. 스페인 속담에 ‘모든 것이 죽음과 동시에 사라지지만 선행만은 남는다’고 했다. 인심을 얻는 것이야말로 곧 선행이 아니겠느냐. 또한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고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고 했다. 시할머니는 이 세상을 떠나가신 후에 너의 가정에 음덕을 내리시기 위해 계신다고 생각하고 지성감천으로 봉양하거라. 보고 싶구나”


#어버이께 서중(暑中)인사편지를


엄하고 과묵하기만 했던 이 땅 아버지들의 깊은 속정이 담긴 편지를 읽으면서 많은 심사위원들은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어디 이 아버지들 뿐이랴. 세파에 허청이고 질척거리면서도 자식 커가는 재미 하나로 온갖 고난과 업신여김을 잊고 버텨온 그들이 아닌가. 어릴적 아버지의 등에서 느꼈던 땀내음이 진한 그리움으로 전해오는 오늘은 초복. 오, 아버지!


/박영환기자 yh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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