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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담 공유

낮은곳으로 더 낮은곳으로 "천사표 우정"px,auto,au

작성자
별**
작성일
2001-07-16
댓글
0
조회수
1503

지난 5월, 화장품 업체인 클린앤 클리어에서는 10대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이색행사를 펼쳤다. 이름하여 ‘수리수리 얍! 페스티벌’. 가장 소중한 친구의 소원을 엽서에 적어 보내주면 마치 마술처럼 그것을 이뤄주겠다는 내용의 이벤트였다. 2,000통이 넘게 배달된 여학생들의 소원은 각양각색. 강아지를 잃어버린 친구에게 예쁜 강아지를 선물해달라는 내용부터 집이 가난해 문제집을 살 수 없는 친구에게 도서상품권을 배달해달라는 사연까지 다채로웠다.


하지만 가장 감동적인 소원은 따로 있었다. 캐나다에서 날아온 한통의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고3인 제 친구는 매주말 충북 음성의 꽃동네라는 곳에 가서 봉사활동을 합니다. 방학때는 한달씩 숙식하며 어린아이들과 환자들을 돌봐주지요. 친구의 소원은 태어나서 한번도 새옷을 입어보지 못한 천사원 아이들에게 예쁜 새옷을 선물하는 것입니다’.


편지를 보낸 주인공은 캐나다 랭글리 크리스천 스쿨에 다니는 김지연양(18). 그가 소원을 이뤄주고 싶어했던 친구는 서울 양천여고에 재학중인 이은진양(18)이다. 두 소녀는 고1시절 둘도 없는 단짝이었는데, 여름방학때 꽃동네로 자원봉사활동을 함께 가면서 우정이 더욱 깊어졌단다. 꽃동네에 가면 지연이는 언제나 신생아실을 담당했다. 갓 태어난 아기들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목욕을 시키고 배꼽을 떼주는 일. 은진이는 꽃동네 부속병원인 인곡자애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봤다. 대소변을 받아내고 오물을 치우는 등 궂은 일이었지만 은진이는 이 일을 하면서 미래의 꿈을 가지게 됐다.


“저는 육체적인 봉사를 했지만 그분들은 저의 어린 영혼을 성숙시켜 주셨어요. 특수교육이나 사회복지를 전공해서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어요”


처음엔 사회봉사 활동시간을 채우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꽃동네에 정이 들면서 두 소녀는 주말이면 버스를 타고 음성으로 내려갔다. 지난해 5월 지연이가 캐나다로 유학을 떠난 것은 은진이에겐 큰 슬픔이었다. 청소년적십자 활동을 하면서 세계적십자사에서 일하고 싶어했던 지연이는 입시 위주로 이뤄지는 한국의 고교과정을 미련없이 포기했다. 하지만 두 소녀는 믿었다. 언젠가 한자리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을. ‘나보다 어렵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 살자’는 둘의 꿈이 같았기 때문이다.


지연이가 떠난 뒤에도 은진이는 봉사활동을 계속했다. ‘장애인들의 선생님’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뒤로는 성적도 쑥쑥 올랐다. 주말은 늘 비워둬야 하므로 주중에 열심히 공부한 덕분이다. 캐나다로 간 지연이도 마찬가지. 친척 한명 없는 곳에서 외롭기 그지없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대처하셨을까’를 떠올리며 이겨냈다는 당돌한 소녀다. 꽃동네 사람들의 근황을 시시콜콜 적어보내는 은진이의 편지도 큰 힘이 됐다.


“고3이 돼서도 일요일마다 거르지 않고 꽃동네에 내려가는 은진이에게 뭔가 기쁜 일을 선사하고 싶었어요. 그러다 재미난 이벤트를 발견한 거죠. 정말 소원을 이뤄줄까 의심스러웠는데, 당선됐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지난 11일, 기말고사를 막 끝낸 은진이와 방학을 맞아 캐나다에서 날아온 지연이는 두팔에 선물을 한아름 들고 꽃동네로 향했다. 1년 만에 꽃동네를 찾게 된 지연이는 누구보다 베드로를 만날 기대에 부풀어있었다. 울보에 못난이였던 그 아기가 아직도 그곳에 있을까. 지연이 목소리만 들리면 울음을 그치던 베드로를 만나면 엄마처럼 꼭 껴안아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김윤덕기자 ju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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