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문래동 노숙자 쉼터 ‘자유의 집’에 사는 손경상씨(58)는 노숙자가 되고서야 비로소 인생의 꿈을 찾았다.
7살 때 전쟁으로 집이 불타고 부모님은 온갖 병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났다. 고아원에 맡겨져 고사리손으로 두부장사를 하고 다방 심부름을 했다. 그러다 미국인 부부 후원자로부터 매월 10달러의 학비를 받게 되면서 목사가 되어 자신이 받은 만큼 남들에게 베풀어야겠다고 결심했다.
1965년 중앙대 철학과에 입학한 손씨는 그러나 서울 사람들의 풍족함과 여유로움을 보고 꿈을 포기했다. “나도 남들처럼 즐기며 살고 싶다”. 지친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든 생각. 졸업후 처가에서 운영하는 무역회사에 들어가 탁월한 영업능력을 발휘했다. 욕심이 생기자 상경해 직접 회사를 차렸다.
하지만 권력과 끈이 닿아있던 경쟁회사의 영업방해로 3년 만에 회사문을 닫았다. 술이 그의 친구가 됐으며 아내와 세 아들과 점점 멀어졌다. 99년 결국 집을 나왔다. ‘자유의 집’을 찾아갔지만 마음 속 분노로 적응하지 못했다.
청량리 가나안 교회에서 6개월 동안 일하며 안정을 찾았다. 알코올 중독자 1명을 돌보다 그와 함께 올 4월 ‘자유의 집’에 다시 입소했다.
재수에 성공한 손씨는 “이제는 정말로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신념이 생겼다”고 말했다.
손씨는 두어달 전부터 인근 영일시장에서 폐지를 주어 고물상에 넘긴다. 매일 새벽 4시30분에 리어카를 끌고나가 4시간 동안 리어카 2대 분의 폐지를 담아 온다. 한달동안 40만원을 벌어 절반은 시장 상인 자녀들의 장학금으로, 남은 반은 소년소녀 가장을 위한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손씨는 “지나고 보니 내 인생은 욕심과 실패, 방황의 연속이었다는 사실을 노숙자가 되고서야 깨달았다”며 “목사는 되지 못했지만 봉사하며 살겠다는 어릴 때의 꿈을 이제서야 시작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