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menu-icon
mobile-menu-icon
close
close

미담 공유

억새밭에 피어나는 자활의 꿈;}

작성자
별**
작성일
2001-09-04
댓글
0
조회수
1804
“여기 좀 봐, 성냥개비만한 것이 벌써 무릎까지 자랐어.”
8월의 마지막 날인 31일 오전 초록 들판을 가로질러 멀리 행주대교가 내다보이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현천동의 한 비닐하우스 안. 이곳에서 넉달째 수생식물을 재배해온 이승환(45)씨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줄지어 늘어선 억새 사이에서 피를 뽑아낸다.

“한달 뒤면 마포에 있는 홍제천에다 심을 수 있을 거야.” 이씨 곁에서 고무호스로 물을 주던 전석봉(54)씨는 싹을 틔운 모종을 일일이 화분에 옮겨심어 수만 포기의 억새를 길러낸 것이 스스로도 대견한 듯 흐뭇한 표정이다.

지난 봄 900여평의 들판에 비닐하우스 한 동을 짓고 억새와 구절초, 해국 등을 키워온 이들은 지난해 10월 실시된 국민기초생활보장제의 수급대상자들이다. 다달이 일정 금액의 자활급여비를 받고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전씨를 포함해 모두 6명이다. 근로능력은 있지만 대부분 학력이 낮거나 별다른 기술이 없어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방황하다 빈곤층으로 나앉을 뻔했던 사람들이다.

서울 마장동에서 20여년간 고기 도매업을 하다 4년 전 빚만 잔뜩 지고 주저앉은 전씨, 젊은 시절 고기잡이와 석탄 광부로 일을 했던 이씨처럼 다들 만만찮은 이력을 지녔지만 사업에 실패한 뒤 술과 노름에 빠져 가산을 탕진한 사람도 많다.

“앞으로가 중요한 거지, 지나간 건 소용없는 거야.” 이씨가 뭔가 의미심장한 얼굴로 말을 잇는다. 5년 전 아내와 사별한 뒤 만성질환에 교통사고까지 겹친 노모를 혼자서 부양하는 이씨로서는 당장 한푼의 돈이라도 아쉬운 형편이다. 자활급여로 하루 2만원씩의 일당을 받는다지만 한달에 50만원도 채 안되는 돈이다. 그런데도 이씨는 자신보다 더 불우한 사람들이 걱정이다.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려면 여기서 더 열심히 일해야 돼.”

몇해 전부터 소년소녀가장에게 용돈과 쌀을 후원하고 있다는 그에게 자신의 처지를 일깨우자, “김치 한쪼가리라도 나눠 먹으면 맛있지 않느냐”고 정색을 한다.

올 초 `업그레이드형 자활근로'' 대상자들로 선정된 이들의 꿈은 보건복지부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아 마련한 이곳 터전에서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것이다.

마포자활후견기관의 이근희 과장은 “업그레이드형 자활근로란 종전 동사무소를 통해 하던 거리정비 등 단순한 취로형 자활근로에서 진전된 개념으로, 조건부 수급권자의 근로능력에 맞는 사업을 개발해 궁극적으로 자활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마포구에서 올해 선정된 복지간병 집수리 등 7개의 업그레이드형 자활근로 사업 중에서도 수초사업은 성격이 조금 특이한 편이다. 생태공원 조성과 수질정화에 탁월한 수초는 한강과 밤섬, 월드컵경기장을 끼고 있는 지역 특성에 맞아 수익성과 공익성을 동시에 꾀하는 이점이 있다. 판로만 확보하면 한 포기에 200원씩은 거뜬히 받겠지만 사업초기인 탓에 어떻게 시장을 개척하느냐가 문제다. 하지만 구청쪽에서 도움을 주기로 약속한 터라 큰 걱정은 덜었다.

“400여평의 자투리 땅에는 단풍과 주목, 줄장미를 심고 김장철에 대비해 배추와 무도 심을 겁니다. 내년엔 터를 5천평으로 늘려 본격적으로 수생식물을 키워볼 작정이구요.”

억새밭에서 삶의 희망을 건져올린 이들의 자활 다짐이다.

홍대선 기자 hongds@hani.co.kr

첨부파일
비밀번호 입력
본인확인을 위해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비밀번호 입력
본인확인을 위해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