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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담 공유

''학년 1반’ 박을선 할머니

작성자
제**
작성일
2002-05-24
댓글
0
조회수
2474

“배우지 못한 한을 풀고 싶었지요. 요즘은 하루하루가 너무 신이 납니다”


대구 달서경찰서에서 청소 일을 하고 있는 박을선 할머니(65)는 경찰서 옆 월성초등학교 4학년1반 청강생이다. 한달 남짓 사회, 음악, 수학 시간만 골라 손자, 손녀뻘 되는 초등생들과 함께 뒷자리에서 수업을 듣는 박할머니는 늦은 나이에 배우는 셈하기, 악보 읽기가 다소 버겁지만 새로운 것을 깨우치는 보람에 열심히 선생님 말씀을 듣고 있다.


경찰서 일을 끝낸 오후 늦은 시간에는 인근 월성종합복지관에서 중학교 과정도 공부하는 박할머니는 25일 실시되는 초등검정고시와 오는 8월에 있을 중등검정고시 동시 합격을 목표로 잠을 잊은 채 책과 씨름하고 있다. “경찰서 청소 일도 해야 하니까 하루 3~4시간밖에 못자요. 그래도 공부가 이렇게 재미있고 즐거울 수가 없습니다”


지난해 봄 우연히 초등 검정고시 공고를 보고 가벼운 마음으로 응시했다가 두 과목을 뺀 나머지 과목에서 과락, 고배를 마신 뒤 본격적인 공부에 나섰다. 그런데 수학이나 음악은 도저히 혼자서 공부할 수가 없었다. 고민 끝에 무작정 직장에서 가까운 초등학교를 찾아 사정 이야기를 하고 수업 청강을 부탁했다. 하지만 보수적인 학교에서 이런 ‘파격’을 선뜻 받아들일 리 없었다. 학업 분위기를 염려해 난색을 표시한 것이다. 4번을 다시 방문해 끝내 허락을 얻었다.


배움에 한이 맺힌 분의 간절한 소망을 저버리지 못한 학교측의 배려로 지난달 초부터 수업을 듣게 된 할머니를 손자·손녀뻘되는 아이들은 어려워했다. 그러나 이제 정이 많이 들었다. 같은 반 친구(NULL)로 할머니의 과외교사 역할을 하고 있는 손문희양(11)은 “한번 가르쳐드리면 금방 이해를 하신다”면서 “머리가 상당히 좋으신 것 같다”고 말했다.


1980년부터 22년째 경찰서에서 일하고 있는 박할머니는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어 월성동 13평 아파트에서 홀로 지내고 있다. 남편과는 일찍이 사별하고 아들 둘은 결혼해서 분가시켰다. 할머니는 “70세 되기 전 방송대학에 진학한다는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면서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해 여생을 불우한 이웃을 위해 살고 싶다”고 말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박할머니는 경남 밀양 출신으로 초등4년이 학력의 전부다.


“시험에 꼭 붙어 공부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신 경찰서와 초등학교 선생님들을 기쁘게 해드려야 될 텐데 걱정”이라고 말하는 육순의 할머니는 수업 시작 종이 울리자 어린 학생들 틈에 끼어 부지런히 교실로 향했다.


<대구/박태우기자·연합 tae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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