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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담 공유

고엽제 참전용사‘마지막 布施’

작성자
송**
작성일
2002-07-04
댓글
0
조회수
2173
서해교전에서도 나타났듯 군인은 ‘태평성대’의 시절에도 죽음을 마주보면서 사는 사람들이다. 그런 운명을 받아들인 일부 군인은 때로 죽음마저 기꺼이 껴안으며 몸을 불사른다. 그렇다면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생로병사 네 고통 가운데 병(病)이야말로 인간이 함부로 뛰어넘을 수 없는 최고 고통인 것일까.


고엽제 후유증과 암으로 죽음을 예감한 월남전 참전용사가 용돈을 푼푼이 아껴 모은 2천만원을 동국대 병원 건립에 보태달라며 남몰래 기부한 뒤 세상을 뜬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3일 동국대에 따르면 월남전 참전용사 고(故) 이영춘씨(60)는 지난 4월22일 자신의 통장에 남아있던 2천만원을 차남 충근씨(27·동서울대 레저스포츠과 1)를 통해 동국대로 무통장입금시킨 뒤 5월30일 세상을 떠났다.


이 학교 신관호 홍보실장에 따르면 이씨는 동국대 송석구 총장이 직접 출연한 동국대 병원 건립 광고를 불교방송에서 듣고는 동국대에 전화했다. 이씨는 “얼마 안되는 돈이지만 몸 건강한 자식들에게 물려주기보다는 몸이 아픈 사람을 돕는 게 보람있을 것 같다”는 말로 기부 의사를 밝혔다. 이에 동국대 학교발전기금 관계자가 경기 성남시 상대원2동 이씨 자택을 방문하자 “통장번호만 적어놓고 가라”면서 면담을 거절한 채 등을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장남 종근씨(31·직장인)에 따르면 이씨는 1967년 해병대 하사관으로서 월남전에 2년간 참전했고, 전역 이후 인천에 사무실을 차려 경리사원도 없는 ‘1인 회사’ 사장으로서 30여년간 백령도 해병부대에 생필품을 납품하며 근근이 생활해왔다. 지난해 말 고엽제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월 1백만원씩 받아온 연금에다 평소 아껴쓴 용돈을 모아 기부한 셈이다.


이씨의 부인 이미경씨(57)는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남편이 먼 길도 걸어다니고 옷도 제대로 사 입지 않으며 어렵사리 모은 돈을 기부하겠다고 해 처음에는 반대했다”면서 “하지만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떠나고 싶다’는 남편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씨가 동국대에 기부한 이유는 2000년 여름 육종암 판정을 받으면서 불교에 심취하기 시작한 인연 때문. 원래 이씨는 고엽제 후유증으로 보훈병원에 입원하는 등 투병생활을 해왔다. 또 전국의 암자와 절을 찾아다니며 기(氣) 수련 등을 해왔다. 그러다 암에 걸리면서 본격적으로 불교 경전을 읽고 불교방송을 즐겨 들었다. 2000년 11월 췌장 등 장기(臟器)의 3분의 2를 제거하는 대수술을 받고서도 암이 양쪽 다리까지 전이돼 하반신이 마비되는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군인 출신 이씨는 적(敵)이나 죽음 자체보다는 그 적과 죽음에 정면대결해야 하는 자기 자신을 안으로부터 무너뜨리는 병을 더욱더 두려워한 듯하다. 이씨의 부인은 기부금 쾌척 배경에 대해 “아마도 자기가 아프면서 세상에서 아픈 사람이 제일 불쌍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고 짐작했다.


그는 또 때로 투병 과정에서 자기 자신이 아닌 처자(妻子)의 도움을 받는 것조차 자존심의 훼손과 동일시한 느낌도 든다. 차남 충근씨는 “아버지께서는 암이 두 다리에까지 번져 제대로 걷지 못하고 스스로 대소변도 못가릴 지경에 이르렀지만 절대 간병인을 두지 않았다”면서 “안방 안 욕실에 모종의 장치를 설치하라고 시킨 뒤 어렵게 움직여서 스스로 대소변을 해결하는 등 가족에게조차 싫은 모습을 보이지 않으시려고 끝까지 노력하셨다”고 말했다.


충근씨는 또 “장례식장에 선친의 해병대 37기 동기분들이 많이 오셨는데 ‘대단한 사람’이란 말을 많이 하셨다”면서 “충북 괴산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고교까지 졸업했으며 친구에게도 손을 빌리거나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던 꿋꿋한 자존심에 대한 말이 많이 나왔었다”고 전했다.


장렬히 싸우다 적의 총탄에 죽는 것만이 군인의 영광된 죽음이 아닌 듯하다. 죽는 순간까지 인간의 위엄과 자존심을 지키는 것도 참군인의 또다른 면모라고 이씨는 말하는 것 같다. 이씨의 유해는 4일 오후 1시30분 대전국립묘지에 안장된다.


〈김중식기자 uy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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