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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담 공유

소박한 행복 - 노인들의 친구;}

작성자
변**
작성일
2002-11-26
댓글
0
조회수
369
소박한 행복 - 외로운 노인의 친구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이곳 후평동으로 이사를 온 것은 주택조합이 생기면서 집터를 내주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사를 올 때에 이웃 할머니가 눈시울을 붉히면서 서운해하였다.
나이가 들어 외롭고 돌보아줄 젊은 아낙네가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니 서운하고 또 본인 곁을 떠나니 외로움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언젠가 향토음식 차리기 행사에 간 적이 있다. 옛날 살던 동네 노인이 외롭게 서성거리고 계신는 것을 보았다. 인사를 하고 막국수와 빈대떡을 대접하였다. 그러나 그분은 연세가 많아 우리를 제대로 알아보지를 못했다. 옛동네 소양로 모스물재(옛 동네 이름)에 집까지 모셔다 드린 적이 있다.
소양로 옛집에 살 때에 우리 집에 세 들어 살던 아주머니가 있다. 홀로 사는 분이었다.
관절과 신경통으로 사고 있는 분이다. 외롭고 쓸쓸하게 지내는 분을 생각하고 김장철이 되면 조금 여유 있게 만들어 놓고 오시라고 해서 보내드린다. 막걸리를 한 병을 사서 함께 들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종종 전화를 하고 안부를 묻곤 한다.
원래 처갓집은 옛부터 농토가 많은 편이었다. 지금은 다섯 남매를 공부시키느라고 팔아서 돈 나가는 땅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현상 유지를 하고 있는 편이다.
집사람의 고모 한 분이 아들들과 살고 계신다. 그러나 다 큰아들이 있건만 결혼을 시키지 못하고 어렵게 살고 계신다. 처갓집이지만 아들인 장손이 많은 땅을 물려받고 딸은 왜 물려받지 못했는지 안타깝게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지난 일년동안 우리 내외는 백여 평에 들깨와 참깨, 고추를 심었다. 아내는 어렵게 사는 고모에게 들깨기름을 짜서 드리려고 준비를 해놓고 나를 태워다 달라고 조른다. 난 담담하게 아내를 태우고 아홉달된 손자를 안고 간 적이 있다.
무거운 손자를 안고 사층까지 올라가 인사를 하고 사는 모습을 보고 돌아왔다.
아내는 즐거운 표정이다.
내가 가진 것을 나보다 어려운 이웃 친척에게 주며 살아왔다. 아내가 아는 친한 사람들은 나이 많은 할머니들이다.
아내는 다섯 남매의 맏딸이다. 부모, 동생들 사이에서 어렵게 살아왔다.
그래서 그런지 남과 잘 어울리고 본인이 가진 것을 주기를 좋아한다.
이웃에 암 말기의 환자가 있다. 삼 개월 동안 기도를 하고 위로를 하였다고 한다.
병원치료 보다는 식이요법으로 호전되었다고 한다. 그 환자가 무공해 쌀을 구해 부인과 함께 우리 집에 가져왔다. 그것도 옆집이 알까봐서 어두운 밤에 말이다.
항상 가진 것을 나누고 그리고 자기보다 나이 많은 노인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곱게 느껴진다.
어떤 관상을 좀 보는 노인이 나보다 아내가 복이 있다고 한다. 그 복으로 산다고 말이. 내가 봉급을 받아 사는 것이 나의 복이 아니고 아내의 복이라고 이야기를 들을 때에는 억울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함께 살면서 잘 살면 됐지 따질 것도 억울할 것도 없다고 생각해 본다.
오늘 따라 아내의 잠자는 모습이 사랑스럽고 미인 같고 고맙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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