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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담 공유

고사에서 핀 작은 새싹

작성자
변**
작성일
2002-12-13
댓글
0
조회수
6699
고사목에서 핀 작은 새싹
2002. 12. 황 명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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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한지 벌써 3년째 된다.
결혼을 해서 시부모님과 시외할머님을 모시고 살게되었다.
결혼 전에 시아버님이 뇌졸중으로 두 번 쓰러지셨다고 했다. 자식된 도리로서 부모님을 모시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기에 결혼을 했다. 그러나 생각했던 바와는 달리 결혼 생활은 너무 힘들었다. 남편과의 문제가 아니라 병드신 시아버님을 모시는 일이 너무 힘들었다. 겉으로 힘들다는 말은 못하고 속으로 삭이면서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힘들다고 어떻게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울면서 기도하곤 했었다.
낯선 환경에서 전혀 경험이 없던 사람들과 한 집에서 사는 일이 쉽지는 안았지만 나름대로 잘 해보려고 노력했다. 시아버님은 뇌졸중으로 쓰러지셔서 혈관성치매와 노인성 치매가 왔기에 3-4세 정도의 지능이 되어버렸고, 몸은 자신의 의지대로 잘 움직이시지 못하셨고, 무엇이든지 즉시즉결이며, 제자리에 모두 갖다 놓아야 하며, 한 밤중에도 밥을 먹는다고 소리를 지르시고, 배설기능 또한 마음대로 되지 않아 하루에도 몇 차례 옷에다 보는 경우가 많으셨으며, 하루종일 이를 가셨다. 게다가 결혼하는 해 겨울에는 시외할머니를 모시던 분이 교통사고가 나서 할머니까지 모시게 되었다. 할머니께서는 걷지를 못하셔서 방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시는 분이셨다.
결혼 한 후 얼마 안되어서 임신을 한지라 입덧이 그리 심하지는 않았지만 집안에서 풍기는 배설냄새는 정말 맡기가 힘들었다.
거실에서, 화장실에서 숨을 참았다가 방에 들어가서 숨을 내쉬는 일이 종종 있었다. 이런 일들이 계속 반복되어지면서 하나님 앞에 무릎 꿇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기에 하나님만을 의뢰하며 나아갔다. 교회에만 가면 눈물을 앞을 가렸다. 다른 사람들은 결혼해서 둘만의 공간에서 재미있게 편하게 잘도 살아가는데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자주 들기도 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나의 마음을 하나씩 바꾸어 나가기 시작하셨다. 기도하는 도중에 마음에서 들리는 음성이 있었다.
'네가 하나님을 믿는 다고 하면서, 나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무엇을 보여주었느냐NULL 기도 많이 하는 것이, 성경 많이 읽는 것이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느냐NULL 내가 너를 사랑한 것 같이 너의 시아버지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며, 그 안에 내가 있느니라.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한 참을 울고 또 울었다. 나의 겸손치 못한 생각과 오만함에 대해, 나 자신의 편안함만을 생각하는 나에 대하여 회개를 하게 되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기도 후 아버님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달라지게 되었는데 아버님이 너무나도 소중해 보였고, 귀한 한 영혼으로 보이게 되었다. 그래서 마음에서 우러나와 아버님을 모시게 되었고, 아버님 역시 며느리인 나에게 이마에 손을 얹으시고 '충성'하시며 인사를 하시면서 아이들이 엄마 앞에서 재롱을 피우듯 아버님도 나에게 재미있는 행동을 하시며 입가에 웃음을 짓도록 하셨다.
한 번은 한 살된 아들과 나와 아버님 셋이서 집에 있는데 아버님께서 대변을 옷에다 보시게 되어 치우는데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면서 나의 아들을 쳐다보게 되었다.
'사람의 앞일을 누가 알까NULL 나이가 들어 내가 아버님의 자리에 서게 되었을 때 내가 이렇게 되면 내 아들이 수발을 들어야 하는가NULL 또한 아버님께서 며느리가 당신의 몸을 씻겨드린다는 것에 대한 수치감을 모르시는게 한편으로는 다행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아! 내가 내 손으로 용변을 보고 뒤처리를 할 수 있다는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인생의 무상함과 세월의 허송함, 인간의 연약함 등등에 대해 되새겨 보게 되었다.
식사 때 또한 밥을 마구 넣으셔서 구역질할 때처럼 소리를 내시면서 식사를 하시는 아버님을 볼 때면 그래도 당신 손으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아버님이 앓아 누으셨다면 누군가의 손을 빌려서 식사를 하셔야 할 게 아닌가?
또한 모든 뒷일을 아무말씀 없이 감당하시는 시어머님을 보고 참 대단하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같은 여자로서 그 입장을 볼 때 너무나도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당신 남편 수발, 당신 친정 어머니 수발이었지만 하루 이틀도 아닌 몇 년을...
어머님은 힘드신 모습을 잘 보이시지 안으셨지만 가끔 어머님의 어깨를 주물러 드리면 어깨 근육이 단단히 굳어 있는 것을 볼 때면 어머님이 고생을 많이 하시는구나! 이런 상황에 손주까지 돌보아 주시니 너무 미안하기도 했고, 고맙기도 했다
집에 하루종일 있어도 두 다리 뻗고 누워있을 시간이 없다. 밤에도 물론 잠을 푹 자지 못한다. 어머니에 비하면 내가 힘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도 모르게 또 나 자신의 편안함만을 찾으려 했었다.
시외할머니께서도 우리집에 오셔서 예수님을 믿고 2002년 여름 8월에 천국으로 소천하셨다.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되어진 것은 할머니께서 우리집에 오신것도 하나님의 뜻이 었구나 싶다. 한 영혼이 얼마나 귀한가? 예수라는 사람의 역사적 생존과 역사적 부활이 나의 삶의 관점을 바꾸어 놓았다. 사후의 삶! 영원한 삶이 있다는 것에 확신을 하게 되면서 나의 인생관은 이 땅에 목적보다는 영원한 삶에 목표를 두고 그 곳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게 되었다.
부모님을 잘 공경하는 것이 곧 내가 잘 되는 길임을 알게 되었고, 내가 내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인지도 알게 되면서 이제는 예수라는 분을 통해 하나님을 믿게 되어 그분을 의지, 의뢰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나 또한 나약한 인간이기에 매일 넘어지고 지치고, 욕심부리고 하지만 오늘 다시 무릎꿇고 나의 삶의 하루를 돌아보며 반성한다.
아무리 잘난 사람도 부모없이 이 세상에 나지는 않는다. 부모님이 계시기에 이 땅에 내가 존재 할 수 있는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나 생활속에서 부모님께 감사하며, 효도하며 살기란 그리 쉽지는 않은 것 같다. 돈을 많이 벌어서 갖다 드리는 것보다 부모님의 마음을 편하게, 기쁘시게 해드리는게 효도라 생각한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제사를 일천 번 드리는 것보다 살아 생전에 잘 모시는게 백번 낮다는 생각을 가지고 산다. (물론 내가 너무나 잘하고 있다는 게 아니라 지금도 부족하고, 힘들어하고 하지만 조금씩 노력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있지만 친정 어머니가(친정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심) 항상 마음에 생각되어지며 자식키우시느라 당신 고생하신 것을 무엇으로 효도를 할지 마음에 항상 고마움과 감사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나 역시 자식을 키우는 입장이라 부모의 심정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당신 희생하면서 자식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당신 힘들어도 자식 생각에 다시 힘내시는 마음, 당신 아프셔도 자식 생각에 두 무릎에 힘 주어 다시 일어나시는 마음... 항상 부모님 만 생각하면 눈물부터 앞을 가린다.
할 수 만 있다면 시부모님, 친정 어머니 모두 모시고 살고 싶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볼 수 있듯이 늙으신 부모님을 보면 나의 인생의 끝은 볼 수 있기에 오늘 내가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게 된다.
미련한 사람은 잔칫집을 찾고, 지혜로운 사람은 초상집을 찾는다는 말이 있다.
항상 마음에 되새기는 말 중에 하나이다.
결혼과 함께 나만을 알던 것에서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볼 수 있는 눈이 조금씩 열리게 되었고, 집안의 여러 환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의 모가 난 부분을 깍아 가시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언젠가 둥글둥글해질 내 마음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오늘도 아버님과 마주앉아 눈을 마주치고 입가에 미소를 지어본다.



황명희 : 현재 춘천시 동산면 조양리 조양초등학교 보건담당 교사로 재직하고 있음


2002.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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