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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담 공유

길 잃은 아이

작성자
지**
작성일
2004-05-26
댓글
0
조회수
796
나는 요즘 시험기간이라 학교에서 조금 가까운 이모 댁에 산다. 이모 댁은 골목이 많고 비슷비슷하게 생긴 연립주택이 빽빽이 들어서 있는 곳이라 어른들도 헷갈리기 쉬운 곳이다. 나도 처음에는 많이 헷갈려서 이모가 큰길까지 직접 바래다주시곤 했다. 그리고 그런 골목에 익숙해 질쯤에 일이다.

여느 때와 같이 하교를 하고 있는데, 저쪽에 혼자 울고 있는 남자아이가 보였다. 처음에는 넘어져서 그런가보다 하고 가볍게 생각했지만, 가까이서 보니 넘어진 것도 아닌 것 같고, 아무래도 길을 잃고 혼자 울고있는 거 같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울고있는 모습이 꼭, 어렸을 때 내가 길을 잃어 우는 모습 같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울고있는 아이에게 다가가 왜 우냐고 물어보려는 데, 아이는 얼마나 무
서웠는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처음 보는 나에게 덥석 안겨들었다. 나는 처음에는 조금 당황했지만, 그래도 그 아이에게 의지가 될 수 있다는 게 뿌듯해서 금새 아이를 달래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무서웠던 것은 다 잊었는지, 내가 주머니에 있던 사탕을 주며 물어보자 아이는 방긋 방긋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이름은 우진이, 나이는 여섯 살. 사촌형 집에 놀러와서 놀이터에 가다가 혼자 떨어져서 길을 잃었다고 했다. 낯선 곳에 혼자 남겨진 게, 얼마나 무섭고 막막했을까. 나는 우진이를 꼭 도와주어야겠다는 사명감으로 우진이의 손을 잡고 무작정 근처의 놀이터로 향했다. 놀이터에 간다고 했으니까 당연히 그곳에 있겠지 하고…….

그렇지만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놀이터는 텅 빈 채였던 것이다. 나만큼 우진이도 실망했는지, 눈에 다시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나는 내 실망감을 얼른 숨기고, 우진이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며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여기서 기다리면 형이랑 누나들이 올 거야." 하고 말해버렸다. 우진이가 또 울까봐 급한 마음에 선의의 거짓말을 하긴 했는데 속으로는 정말 막막했다. 뭘 어떻게 우진이의 형과 누나를 찾아주어야 할 지……. 한숨만 푹푹 쉬고 있는데, 하느님이 도와주셨는지 저쪽에서 "우진아!!" 하며 달려오는 아이들이 보였다. 나는 서로 얼싸안고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덩달아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누굴 도와주고 이런 기분을 느껴본 게 최근에 있었던가. 항상 시험 걱정, 숙제 걱정에 찌들어 살았는데 그 때만큼은 정말 다 잊고 진심으로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리고 "누나, 고맙습니다." 라고 고개 숙여 인사하며 사촌형과 놀이터로 뛰어간 우진이와 헤어지고 다시 이모 댁으로 오면서 생각했다.

길을 잃은 8살 꼬마의 손을 잡고 집을 찾아준 언니들을.
우연찮게 내가 지금 그 언니들의 나이가 되어 똑같은 일을 하고 나니 느낌이 묘하다. 선행도 돌고 도는 것인가? 선(善)순환. 왠지 어색한 어감이지만, 그래도 악(惡)순환이라는 말보다 흔하게 쓰일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1학년 의반 30번 지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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