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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담 공유

장애아를 둔 어머니의 끝없는 사랑,1

작성자
o**
작성일
2001-01-13
댓글
0
조회수
794
지난 일요일...
전국적으로 눈이 내렸습니다.
이곳 진주에도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아파트 주위를 둘러싼 하얀눈속에 초등학교 아이들로 보이는 사내아이들이 눈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서로 던지며, 맞지 않으려고 깔깔대는 아이들 틈에 보청기를 낀 초등학교 3학년인 상원이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상원인 태어나면서 들을수가 없었기에 말을 할수도 없었습니다.

상원이가 3살이 되면서 여러 병원을 다닌결과 청천벽력과도 같은 의사선생님의 진단이 내려졌습니다.
두 귀중 한쪽 귀는 신경이 없고, 남은 한쪽 귀도 1/3만 남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상원이어머니는 며칠을 눈물로 지샛다고 합니다.

그때 문득 스쳐간 인물...
헬렌켈러의 스승인 설리반이 생각이 났고 한쪽귀의 남은 1/3에 희망을 걸어보며 노력해 보리라는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4살이 되면서 상원이는 익숙치 않은 보청기를 달고 병원내 언어치료실을 다니면서 상원이만의 교육이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으로 만족치 못해 결국 상원이 5살이 되면서 부산 구화학교(장애인특수학교)에 다니기 위해 아버지와 누나들은 진주에 남겨 둔채 어머니와 부산으로 갔습니다.

비록 넉넉치 않은 살림살이지만 상원이를 위해서 어머니의 간절한 바램으로 부산에의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방 한칸짜리 벽엔 온통 그림과 글자들로 채워졌고, 한 단어를 배울때마다 글자를 쓴 카드는 쌓여만 갔습니다.
또한, 특수학교의 수업은 수업대로 열심히 들었고 수업이 끝나면 상원인 어머니와 함께 문구점과 공원, 시장, 백화점등을 다니며 끝없는 어머니와의 단독수업을 계속 했습니다.
항상 메모지를 갖고 다니면서 글을 적어 실제의 물건과 비교하여, 말을 시켰고 상원이의 작은손으로 어머니의 입과 목에 갖다 대고 입모양과 목청의 떨림을 확인시켜가며 말하는 법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 당시엔 어느 누구의 도움도 필요치 않았고 남의 시선 역시 개의치 않았다고 합니다.
믿으건 오로지 상원이와 어머니 자신, 그리고 가족뿐이었다고 합니다.

익숙치않은 보청기와 갑자기 바뀐 환경탓이었을까?
상원인 5살이 되면서 흡사 자폐아동들에게 나타나는 증상 인, 변을 보면 벽에 바르기도 하고 심한 야뇨증까지 보였습니다.
변을 벽에다 바르지 못하게 가르친 기간도 무려 1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드디어 상원인 9살이 되던해에 일반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게되었습니다.
처음 일반학교 생활에서의 적응이 되지 않아 모두가 힘들어, 다시 특수학교로 보낼려고도 마음먹었다고 합니다.
수업도중 말없이 밖을 나가 버리기도 하고, 또래 아이들의 따돌림에 대한 소외감과 정서적인 불안감에 주의가 산만하기도 합니다.

손짓과 발짓, 아빠란 한 단어를 가지고 무려 800번을 반복한 끝에 아빠라 부르는 상원이의 말 한마디......
때론 차가운 매로 상원이를 다스렸던 지난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많이 나아졌기 때문에 어머니는 다시 용기를 냈고, 끊임없는 이해와 사랑만이 상원이에게 필요하다는걸 어머니는 잘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상원인에겐 풀어나가야 과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선생님과의 갈등과 교우관계, 부진한 학습등등...

그러나 따뜻한 어머니의 사랑이 있기에 상원인 오늘도 여느 아이들과 똑같은 겨울방학을 보내고 있습니다.

요즘 들어 사회가 어수선한 이쯤, 간혹 부모의 이기심으로 버려지는 아이들을 생각해 봅니다.
어려울수록 함께하고 서로 돕는 가족의 의미를, 다시한번 느끼게끔 만들어 주는 상원이어머니의 마음에 무한한 존경심이 드는건 비록 저뿐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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