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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담 공유

짝꿍...

작성자
기**
작성일
2001-03-21
댓글
0
조회수
546
측백나무로 담을 두른 시골 초등학교. 땡땡땡, 땡땡땡…. 교무실 추녀밑에 매달린 *학교종이 수업 시작을 알리면 아이들은 검정색 *칠판을 향해 줄맞춰 놓여진 2인용 책상에 짝꿍과 나란히 앉아 부산하게 책과 공책을 펼쳤다. 선생님을 따라 한목소리로 국어책을 읽고, 공책에 *몽당연필 꾹꾹 눌러써가며 산수문제를 풀었다. 음악시간이면 너무 낡아 삐걱삐걱 소리를 내는 풍금에 맞춰 노래를 배웠다. 햇살 가득한 봄날이면 열어둔 창문 사이로 살구꽃 향기가 교실 가득 스며들었다. 콧수건을 접어 훈장처럼 가슴에 달고 입학을 하면 첫번째 짝꿍을 맞이했다. 동네 친구랑 짝꿍 안 시켜준다고 울어대면 선생님도 어쩔 수 없이 짝을 맺어줬다. 1학년들은 짝꿍끼리 늘 손을 잡고 다녔다. 등교길에 사립문 밖에서 ‘영순아 노올자’라고 외치면 짝꿍은 밥숟가락도 내던지고 뛰쳐나왔다.

그때는 학교에 가는 것도 놀러 가는 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수업이 끝나면 짝꿍 집 대청마루에 나란히 배깔고 엎드려 ‘철수야, 영희야 놀자’라는 글귀가 나오는 국어책을 펴놓고 함께 숙제를 했다.


그러나 학년이 올라갈수록 이성 친구와 가깝게 지내는 것이 왠지 창피했다. 새학년 첫 등교를 하는 날 장다리꽃처럼 키가 껑충하고 예쁜 여선생님이 들어오면 박수가, 아이들이 모두 무서워하는 ‘독사’ 선생님이 문을 열면 비명이 터졌다. 선생님은 키 순서대로 줄을 세운 뒤 번호를 정해주고 계집애 머슴애를 짝지어 자리에 앉혔다. 키가 큰 아이들은 남자끼리 짝이 돼 뒷자리를 차지했다. 남녀가 짝꿍이 된 친구들은 남자끼리 짝꿍이 된 아이들을 매우 부러워했다.


아이들은 짝꿍의 책보를 숨기거나 서랍 속에 개구리를 넣는 등 늘 짝꿍을 괴롭힐 궁리를 했다. 책상 한복판에 금을 그어 영역을 나누고 티격태격 싸우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미 곰보가 된 책상에는 선배들이 칼로 새겨놓은 금이 뚜렷해 따로 금을 그을 필요도 없었다. 남자 아이들은 짝꿍의 연필이나 *고무가 금을 넘으면 빼앗아버리거나 멀리 집어던지곤 했다. 여자애들이라고 다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샘이 유난히 많던 왈가닥 소녀 순희는 손톱으로 얼굴을 할퀴며 싸워 머슴애 짝꿍보다 넓은 책상 영토를 차지하곤 했다.


그러나 짝꿍끼리 아옹다옹할수록 속마음은 정반대였다. ‘풋사랑’의 감정에 남몰래 얼굴 발개지던 순수한 시절. 기둥에 고무줄을 매놓고 ‘기찻길 옆 오막살이’를 불러가며 고무줄 놀이를 하는 짝꿍의 고무줄을 칼로 싹뚝 끊어 도망치곤 하던 것도 사실은 그애의 관심을 끌어보려는 심사였다.


짝꿍은 늘 같은 조로 당번을 맡았다. 당번은 1주일 동안 다른 아이들보다 일찍 등교해 주전자의 물을 갈고 꽃병의 꽃을 바꿔 꽂았다. 수업이 끝나면 칠판의 분필 글씨를 지우고 지우개를 털었다. *강냉이빵과 조개탄을 타오는 일도 당번의 몫이었다. 기생충이 많았던 그 시절에는 학교에서 채변검사라는 것을 했다. 깜박 잊어먹고 학교에 가면 짝꿍에게 사정해 변을 나누어 내기도 했다. 산골 외딴집에 사는 아이가 결석을 하면 선생님은 짝꿍을 보내 사정을 알아오도록 했다.


언제나 반의 말썽꾼들은 정해져 있었다. 특히 뒷줄에 앉은 키 큰 아이들은 맨날 출석부로 머리를 얻어맞아도 수업만 시작했다 하면 짝꿍과 장난을 쳐댔다. 복도에 나가 무릎 꿇고 손들게 해도 장난기는 고쳐지지가 않았다. 선생님들은 분필 도막이나 분필 가루 가득한 지우개를 던져 장난에 정신 빼앗긴 아이들을 정확하게 맞히곤 했다.


교실에서는 가끔씩 도난 사건이 일어났다. 선생님이 아이들 호주머니 검사를 하고 책상과 책보까지 다 뒤져도 잃어버린 돈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풀을 뽑아 입에 물고 눈을 감게 했다. 도둑질을 했으면 입에 문 풀이 길어진다나. 짝꿍이 그런 일을 당하면 내가 훔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가슴이 쿵쾅거리고 얼굴이 달아오르던지. 실제로 풀이 길어질까봐 돈을 훔쳤다고 자수하는 아이도 있었던 것 같다.


짝꿍이 공부를 잘 하면 숙제나 시험에서 훨씬 유리했다. 마음씨 착한 짝꿍은 시험 때 선생님 몰래 선선히 답을 보여줬다. 선생님은 가끔씩 시험지를 짝꿍과 맞바꾸어 채점하게 했다. 이럴 때 짝꿍과 모의하면 얼마든지 결과를 조작할 수 있었다.


5, 6학년이 되어 코밑이 거뭇거뭇해지기 시작하면 조숙한 아이들 가운데 짝꿍에게 연서 비슷한 쪽지를 건네는 아이도 있었다.


몰래 쪽지를 주고받다가 다른 아이들에게 발각되면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아이들은 “얼레리 꼴레리 우진이와 명자는 연애한대요” 하고 놀려댔다. 화장실 벽이나 교정의 플라타너스 나무에는 이런 종류의 낙서가 가득했다.


한 학년이 한반밖에 없는 초등학교에 다녔던 한 친구는 키가 작아서 역시 키작은 여자애와 6년 동안 맨 앞자리에 앉는 짝꿍이었다. 그 친구의 필통 속엔 언제나 여자 짝꿍이 몰래 예쁘게 깎아놓은 연필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미술 공작시간이나 자연시간 같은 때의 준비물은 남자 아이가 가져왔다. 이 짝궁의 예쁜 풋사랑은 성인이 될 때까지 이어졌고 지금은 평생 짝꿍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


당시는 이농이 한창인 때였다. 해마다 반에서 한두명씩은 도시나 읍내로 전학을 갔다. 속으로 좋아하면서도 날마다 괴롭히기만 했던 여자 짝꿍이 떠난 날은 마음이 허전하고 속이 쓰렸다. 바지 돌돌 걷어올리고 송사리 잡던 친한 친구도 한번 떠나면 소식조차 없어 두고두고 야속했다.


수줍고 부끄러워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 못했던 ‘첫사랑’의 짝꿍들. 세월이 흘러 이제는 모습조차 아련한 그 시절 그 소년 소녀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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