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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담 공유

소중한 사람이 웁니다

작성자
어**
작성일
2001-04-29
댓글
0
조회수
800
저에게 소중한 사람이 있습니다.

--94년도 겨울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보라매 공원내의 남부 장애인 복지센터이다. 친구의 꼬임에 넘어가 나는 별로 내키지 않는 맘으로 자원봉사를 하게 되었다. 해마다 지체부자유자나 정식박애아인 이들을 자원봉사 선생님들의 동반 하에 제주도를 가는 행사에 내 친구가 나까지 신청서를 낸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부탁을 들어주기는 했지만 맘이 꺼림직 했다. 아직까지 장애인에 대한 내 맘은 열리지 않았던 상태였다. 오리엔테이션은 12월 15일에 열렸다. 거기에는 많은 대학생으로 보이는 친구들이 있었다. 대화 중에 그들은 여러 번 참가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란 것을 알았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참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준비모임을 시작하겠습니다. 나누어 드린 자료를 보세요. 의문점이 있으면 말씀하세요.」
나는 자료를 보다가 맞은 편의 학생을 바라보았다. 수수하게 차려입은 옷이지만 그녀의 얼굴은 인간의 얼굴이 아니었다. 긴 머리에 크고 순하게 생긴 눈, 뽀얀 얼굴. 나는 <도몬 휴우지의 불씨>란 소설의 주인공 일본 요나제와 번의 번주 <요잔>의 부인이 생각났다.
힘이 없어 정략적으로 결혼을 강요당한 성주 요잔의 부인은 저능아이다. 항상 웃기만 하고 아이 같은 행동을 하는 부인을 요잔은 죽을 때까지 사랑했다. 그는 부인을 인간이 아닌 천사처럼 아끼고 사랑했다. 세상사람과는 다르게 악이라고는 티끌만큼 없는 순수성을 지닌 아내였기에 우에스기 요잔은 인간으로 아내를 대하기보다는 천사를 대하듯 하였다.
난 그 요잔의 부인의 얼굴이 내 앞에 앉아 있는 그녀의 얼굴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오래 쳐다봐서일까? 그녀는 내 눈과 마주쳤다. 나는 도둑질하다 들킨 사람 마냥 얼굴이 붉어짐을 느끼며 고개를 숙였다. 내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는 그녀 역시 고개를 숙이고 자료를 보았지만 그녀의 입에는 인간의 것이 아닌 천사의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용기를 내서 말을 걸어보고 싶었지만 망설이다가 끝냈다. 제주도에서 난 아이들을 돌보기보다는 그녀를 훔쳐보기에 바빴다. 결국 제주도에서는 말을 걸지 못했다.
서울로 돌아와서 자원봉사선생님들의 뒤풀이가 있었다. 나는 뒤풀이 내내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밤 11시가 넘어서 뒤풀이는 끝이 나고 하나둘씩 자리를 떠났다. 나는 결국 말을 건네지 못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짐을 꾸려 어깨에 매고 현관문을 나섰다. 다시 그녀를 돌아보고 싶었지만 고개를 한번 흔들어 보고는 문을 열었다.
「저. 잠시만요.」
나는 뒤돌아보고 싶지만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란 것을 알고는 잠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제주도에서 내내 바라보기만 하고 멀리서 들리는 목소리에 무한한 기쁨을 주었던 그 주인공이다.
「저기요......」
다시 그가 불렀을 때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속으로는 무척이나 빨리 고개를 돌려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몸은 맘을 따라주지 않았다. 나는 다리가 떨리고 있음을 느꼈다.
「네. 저 말인가요?」
바보같이.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긴 복도 끝인 현관에는 오직 나와 그가 서 있을 뿐이다. 다시 다리가 아닌 몸 전체가 떨고 있음을 느꼈다.
「왜 벌써 가세요? 더 어울리다 가시지요?」
그는 인간의 어떤 형용사로도 표현할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한발 다가왔다.
「저. 그게......」
「피곤하시죠? 저도 그래서 집에 가려는데 혼자 가기 심심하잖아요. 지하철역까지 가시는 거라면 같이 가요?」
그녀는 또 한 발짝 다가왔다. 나는 그녀만의 빛에 눈이 멀 지경이었다. 나의 인간적 추함은 그의 미소를 겁내고 있었다.
「네. 네.」
단지 이 말 뿐이었다. 같이 보라매공원에서 지하철역까지 가는 그 길이 왜 그리도 짧게 느껴지던지. 그리고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이름만 기억할 뿐.
「벌써 다 왔네. 저는 이제 그만 갈께요. 안녕히 가세요.」
나는 이대로 그녀가 가면 다시 인생에서 그녀를 볼 수 없을 것 만 같았다.
「저 혹시......」
「네?」
「연락처를 알 수 없을까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알 수 가 없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래요. 여기로 전화하세요. 아! 삐삐 번호도 같이 적어 드릴께요. 오빠도 가르쳐주세요.」
난 그녀가 적어준 번호를 손에 꼭 쥐고는 그녀가 지하철 역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봤다. 이것은 우리들만이 이해 할 수 있는 연극의 시작이었다.

그녀는 수업을 하루 빠지고 내가 군대갈 때 훈련소까지 따라왔다. 아무도 같이 가기를 원하지 않았다. 맘이 약해져 사랑하는 이들 앞에서 울먹이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단 그녀가 따라간다고 고집 부릴 때 난 어쩔 수 없이 손을 들고 말았다. 훈련소 앞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고 있을 때 그녀는 계속 웃기만 했다. 신기하다는 듯 재미있다는 듯 계속 바라보기만을 했다. 그윽한 눈빛에 나는 얼마간 저 눈을 보지 못할 거란 아쉬움이 들었다. 얼른 모자를 쓰려는데 그녀는 나를 불렀다.
「잠깐 오빠. 이따가 모자 써봐. 알았지? 잠시만 있다 써.」
개구쟁이 같은 미소로 다가서는 그녀는 얼른 손을 내밀어 내 머리를 만졌다. 부끄러움으로 난 몸까지 벌개짐을 느꼈다.
「부드럽다. 무척. 생각보다 어울린다. 누가 보면 내가 누나라고 하겠다. 그지?」---

제대 후 그녀는 직장이 늦게 끝나 친구 만나고 하면 12시는 기본 새벽 2시나 3시에도 집에 들어왔다. 그래도 전화 자주하고 만나지는 못해도 꼭 전화로 자기의 일상생활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난 항상 그녀에게 오빠로서 인정받고 그렇게 행동했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기에.
"내가 오빠를 한 달만 먼저 만났다면..." 한달차이지만 그에게 먼저 사랑을 고백한 사람이 있었나 봅니다. 그런 그녀였기에 저는 그녀의 손을 그녀가 잠시 버스에서 눈을 붙일동안 아주 잠깐 1초도 안 되는 시간동안 잡아본 그것이 가장 큰 행복이었습니다.

작년에 편지를 받았습니다. 편지하기 1달 전에 결혼했다고 그리고 얼마 후에 아기엄마 된다고.. 내가 아는 그 친구가 아닌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고.. 친구사이였던 그 사 과는 실수로 애가 생겼고 어쩔 수가 없었다고... 편지 태웠습니다. 가슴이 아팠지만 이상하게 눈물이 나지 않았습니다.

저번 주에 연락이 왔습니다. 밤 3시에... 그녀가 메시지를 여러 번 보냈습니다. 미안해서 연락 못했다고...너무 힘들다고..전화하고 싶지만 미안하다고...저는 전화를 계속 걸었습니다.
그래서 연락되고 만났지만 힘들어하는 그 모습에 맘속으로 울었습니다. 그래도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행복하기를 빌었습니다. 그 남자가 잘해주기를 바라며...

지금 막 전화가 왔습니다. 울면서 그녀는 말했습니다. 모처럼 친구들 만나서 밤 9시 조금 넘겼는데 그 남자가 화를 막 내서 지금 울면서 집에 가는 중이라고...애보기 힘들다는 것이 그 남자가 화낸 이유입니다. 알고 보니 결혼 후에 계속 의견충돌로 울면서 지냈다고 합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렇게 힘들어하는 것 지켜만 봐야하는 제가 한심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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