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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담 공유

119만큼 고마운 이름 모를 아저씨,1p

작성자
박**
작성일
2001-07-30
댓글
0
조회수
294

작년 11월이었다. 할아버지의 회갑잔치 때문에 토요일에 외삼촌 차를 타고 가게 되었다. 차에는 외할머니와 외삼촌, 그리고 동생 둘과 사촌 언니하고 오빠하고 탔다. 시골이 완도라서 차가 안 막히더라도 오래 걸린다. 그래서 지루하지 않게 책이랑 워크맨이랑 챙겨서 갔다. 음악을 들으면서 책도 읽고 언니랑 얘기도 하면서 재밌었다. 그러다가 차도 막히고 어두워 져서 한 11쯤부터는 계속 잔 것 같다. 차가 덜컹 덜컹 할 때마다 잠깐 잠깐 깼다. 그러다가 한번은 차가 좀 심하게 덜컹거렸다. 그 바람에 엄청 놀랬다. 그러다가 다시 눈을 붙였는데 거의 한 20분도 안됐을 것이다. 일이 나고 말았다. 우리가 타고 있던 차가 한바퀴를 구르고 말았다. 그 바람에 차안도 아수라장이 되었다. 순식간이었고 무척 놀랐다. 다 자고 있었기 때문에 더 놀랐던 것 같다. 차가 멈췄을 때문에 위쪽에 있었다. 짐과 우리는 다 샌드위치처럼 눌리고 섞여 버렸다. 정신을 차리고 최대한 자세를 좋게 했다. 차가 옆으로 누워있어서 자세 잡기가 엄청 어려웠다. 서로 서로 괜찮냐면서 몸을 추스렸다. 삼촌이 문을 열려고 했는데 구르면서 문이 고장난 듯 싶었다.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차창을 열고 나가셨다. 그래서 우리들도 한 명씩 꺼내주셨다. 모두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다. 단 사촌 언니가 구르면서 차에 무릎을 부딪혀서 약간 부은 것 밖에는 없었다. 밖에 나와서 보니깐 다행히 나무나 가로수 전봇대도 없었고 큰 구렁도 없었다. 그리고 지나가는 차도 없었다. 차만 좀 망가진 것뿐이었다. 외할머니께서 삼촌한테 어쩌다 그랬냐고 물으니깐 삼촌이 잠깐 존 것 같다고 하셨다. 이 때 정말 졸음 운전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게 되었다. 아마 심하게 덜컹 거린 것도 그 탓이었던 것 같다. 삼촌은 119에 전화를 했다. 그런데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차가 어쩌다 한두 대씩 지나갔다. 쌩쌩 잘 가는 그 차들이 어찌나 부럽던지. 그러다 어떤 한 차가 우리 앞에 섰다. 차창이 열리면서 어떤 아저씨가 고개를 내 미셨다. 그 아저씨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래서 사고가 좀 있었다고 했더니 어쩌다 그랬냐며 차는 일단 두고 우리를 태워서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신다는 것이었다. 정말 그때 든 생각이 정말 저런 사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119두 부르고 해서 됐다고 급구 사양했는데도 그 분은 계속 괜찮다시면서 계속 타라고 하셨다. 그래서 일단 나랑 언니랑 오빠랑 동생만 그 차를 타고 갔다. 어떻게 보면 모르는 사람 차를 그냥 타는 게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그분 말 한마디가 정말 우리를 걱정해서 도와주고 싶어서 하는 것 같았고 그런 그 아저씨의 마음만으로도 난 너무나 고마웠기에 아무런 의심없이 탔다. 그분은 친절하게도 우리를 부두까지 데려다 주셨다. 다행히 사고난 곳에서 부두까지 그리 멀진 않았다. 우린 고맙다고 몇 번을 말했다. 그 분은 그 말 또한 괜찮다시면서 당연한 일을 한 거라고 하시며 우리를 내려다 주시곤 가셨다. 한 참 있다가 삼촌이 오셨다. 그 아저씨가 부둣가에 있는 견인센터에 말해주셔서 차를 견인해 왔다. 삼촌이 119에 다시 전하해서 안 와도 된다고 말했다고 하셨다. 견인차가 더 빨리 간 듯 싶다. 어쨌든 나는 그 아저씨 차번호를 종이에 적어 두었었다. 나중에라도 그 아저씨를 찾아서 보답할 마음에 말이다. 그런데 집에 와서 찾아보니까 그 종이가 보이질 않았다. 아무래도 그 종이를 시골에 두고 온 듯 싶다. 광주 차였는데 만약에 나중에라도 그 종이를 찾게 되면 꼭 그 아저씨께 보답해 드리고 싶다. 자신의 갈 길을 마다하고 도와주신 그 아저씨를 칭찬하고 싶다.

서울여상 1학년 숙반 18번 양민주 학생의 칭찬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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