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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담 공유

"1500명이 저를 ''어머니''라 불러요",

작성자
별**
작성일
2001-06-19
댓글
0
조회수
1816
부산시 해운대구 우2동 박애원 원장 임온전(72.여)씨는 직접 낳은 자식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그를 `어머니` 라고 부르는 아들딸이 1천5백여명이나 된다. 모두 그가 기른 사람들이다.

임원장은 1957년 박애원을 세운 이후 44년간 전쟁고아.가정고아.미감아(未感兒.나병환자의 자녀이나 감염되지는 않은 어린이) 등을 친자식처럼 키워 왔다. 지금도 박애원에는 4~18세 어린이 81명이 그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고 있다.

박애원에는 고마움을 잊지 않고 찾아오는 아들.딸이 줄을 잇는다. 명절 때는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다. 지난 15일에도 김천.김해 등에서 48세의 박애원 동기 4명이 "친정에 왔다" 며 들렀다.

안귀선(48)씨는 "옛날이 그립고, 함께 생활했던 친구들이 보고 싶을 때가 많다" 며 "어머니는 잘 먹이고 입히려고 갖은 고생을 했다" 고 말했다.

그러자 임원장은 "그 때는 아이들도 밭을 매고 닭장을 돌봐야 살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며 "아이들에게 일을 너무 많이 시켜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며 눈시울을 적셨다.

임원장은 57년 미감아 8명을 데려와 키우면서 `영원한 고아의 어머니` 가 됐다. 미감아 보호소에 우연히 들렀다가 "우리 엄마가 돼달라" 고 막무가내로 조르는 아이들을 뿌리칠 수 없었다.

막상 시작했지만 젊은 여성에겐 벅찬 일이었다. 다행히 남편(93년 작고)이 기증한 땅 9천평에 닭 5천마리와 젖소 열다섯마리를 키울 수 있었다. 무.배추.고구마.감자 등을 손수 재배해 식탁에 올렸다. 그는 초창기에 중학교 시험에 합격한 열 한명에게 등록금을 대주지 못했던 일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학교에 찾아가 애원했지만 서무과장은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그것은 당신 사정이니 쓸데없는 말 하지 말라` 고 했지요. 그 때 왜 그리 눈물이 나오던지…. "

임원장은 64년 한독직업보도학원을 세워 양장.타자.수예.꽃꽂이 등을 직접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 학원은 후에 해운대공고가 됐다. 박애원 출신 중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은 없지만 모두들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빗나간 사람은 없다.

박애원에서 자란 사람들은 매달 또는 석달에 한 번씩 기별로 모여 우의를 다진다. 내년 봄에는 전원이 모이는 자리를 마련할 계획이다. 부산시는 희생과 봉사정신으로 살아온 임원장을 `제3회 부산여성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시상식은 7월 2일 오후 2시 부산시청에서 열린다.

글=정용백,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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